
김대중 정부 시절 관료였던 고(故)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장 전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부터 경제 위기를 경고했던 대표적인 경제통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공직자와 금융인, 정치인을 거쳐 경제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히는 만큼 정치권과 경제계 곳곳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장재식 전 장관은 지난 28일 오전 11시 50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일 오전 8시 엄수될 예정이다.
1935년 광주에서 태어난 장 전 장관은 독립운동가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장재식 전 장관은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쳐 1956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며 공직 생활에 돌입했다. 국세청에서 주요 보직을 거쳐 1973년 국세청 차장직에 올랐으며, 이후 한국 주택은행장직을 맡았다. 또한 1985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또한 장 전 장관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정계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서울 서대문을에서 15대와 16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되며 3선 의원을 지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경제 정책을 이끌었다.

특히 장재식 전 장관은 외환위기 이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며 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장 전 장관은 1996년 국정감사에서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 문제를 지적하며 환율 조정과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IMF 외환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그의 발언이 다시 조명됐다. 1999년에는 국회 IMF 환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아울러 고인은 두 아들을 세계적인 학자로 키워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장남인 장하준 런던대학교 SOAS 경제학과 교수와 차남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교 물리학 석좌교수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다.
장 전 장관은 생전 방송을 통해 자녀 교육 철학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7년 방송 인터뷰에서 장재식 전 장관은 “평소 아이들에게 ‘실력을 키울 것, 운동할 것, 타인을 사랑할 것, 건전한 취미를 가질 것’ 4가지를 강조했다”라고 회상했다.
장 전 장관의 별세로 한국 경제정책과 정치권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 인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경제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장재식 전 장관의 통찰력과 공직자로서의 발자취는 오랫동안 기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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