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한 뒤 효도를 받지 못해 후회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막기 위한 ‘효도계약서’ 작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효도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반드시 효도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효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도계약서’는 쉽게 말해 효도를 조건으로 내건 증여 계약, 즉 ‘부담부증여’의 한 형태다. 아파트를 자식에게 넘기면서 전세금 반환 의무까지 함께 떠넘기는 사례처럼 효도 또한 증여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효도를 조건으로 한 계약은 구체성과 적법성을 충족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사례를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면서 ‘효도를 잘할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법원은 이를 부담부증여로 인정하지 않은 판례들이 다수 존재한다. 2015년 한 사건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건물 지분과 아파트를 넘긴 뒤 효도가 이뤄지지 않자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유는 ‘부모를 물질적·정신적으로 편안히 모신다’라는 조건이 모호해 효도 의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80대 A 씨는 손자들에게 건물 지분을 주면서 효도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심부름을 잘해야 한다’라는 조건은 법적으로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법원은 ‘심부름’의 구체적 내용과 기준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전문가들은 효도계약서의 핵심은 바로 조건의 ‘명확성’이라고 강조한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조재영 웰스에듀 부사장은 “효도의 조건은 금전적 지원이나 정서적 교류 등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으며, 금액, 횟수, 기간 등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매월 생활비 50만 원 지원, 주 1회 부모 방문, 월 3회 이상 안부 전화 등의 조건이 포함되어야 분쟁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요구하는 효도의 내용은 현실 가능해야 한다. 직장에 다니는 자녀에게 매일 세 끼 식사를 챙기도록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과중한 돌봄을 의무화하는 것은 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효도계약서는 명확한 조항과 현실적인 요구를 담아야만 부모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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