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하반기 강원도 강릉시에서는 이례적인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다. 현직 국회의원이던 최욱철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였다. 이 빈자리를 두고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인물이 있었다.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권성동이었다. 그는 이 선거에서 승리하며 국회에 첫 발을 들였다. 누군가 자격을 잃고 떠난 자리에서 그의 정치 인생은 시작된 셈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이 발을 들였던 그 방식 그대로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실형이 확정되면서다. 대법원은 지난달 16일 그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 원을 확정했고 이로써 그는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그의 혐의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2년 1월 6일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교단을 지원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 원을 받은 내용이다. 정치자금을 부정하게 수수한 혐의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되는데 그는 벌금형이 아닌 실형을 선고받았다.

돌이켜보면 그의 정치 이력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었다. 1980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해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해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뒤 검사의 길을 걸었다. 수원과 춘천, 서울의 여러 지방검찰청을 거치며 특수부와 조사부 부장검사를 지냈고, 2006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잠시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초선 시절부터 그의 행보는 두드러졌다. 4개의 상임위원회와 3개의 특별위원회를 오가며 활동했고 재선 이후에는 여야 갈등이 가장 첨예한 법사위와 환노위 간사를 도맡아 협상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국정조사, 해외자원외교 국정조사 등 굵직한 사안마다 간사를 맡으며 당 내외에서 ‘간사 전문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치적 위상이 크게 흔들린 계기는 박근혜 정부 말기였다.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사태 이후 비박계로 분류되며 당 사무총장에 올랐으나 총선 백서 발간과 모바일 투표 도입, 무소속 당선자 복당 처리를 밀어붙이다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혀 임명 3주 만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야 했다.
이후 국회 법사위원장 자격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을 맡아 헌법재판소 심판정을 지켰고 탄핵이 인용되기까지 여야 위원들과 협조하는 모습으로 나름의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 일로 보수 강경층에게는 ‘탄핵5적’이라는 꼬리표가 오랫동안 따라붙었다.

이어 그는 바른정당 창당에 합류했다가 이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는 등 부침을 겪었고 21대 총선에서는 탄핵의 책임을 이유로 아예 공천에서 배제되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했다. 강릉에서 보수표가 세 갈래로 쪼개진 접전 끝에 2.08%포인트라는 근소한 표차로 겨우 살아남았고 이때의 위기를 넘긴 경험은 이후 그를 상징하는 정치적 맷집의 근거가 됐다. 무소속 당선자 중 가장 먼저 복당원서를 제출하며 당에 돌아온 그는 이후 원내대표 경선에도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강릉이었다. 2021년 5월, 두 사람이 강릉에서 저녁을 함께한 자리가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를 모았고 이후 그는 대선 캠프 종합지원본부장과 후보 비서실장, 당 사무총장을 두루 거치며 이른바 ‘윤핵관’이라 불리는 최측근 그룹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 출범과 함께 집권여당 첫 원내대표에 올랐지만,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와 번복을 둘러싼 혼선으로 지지층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준석 대표 징계 국면에서는 당대표 직무대행이라는 무거운 자리를 떠안기도 했다.
22대 총선에서는 11%포인트 격차로 5선에 성공하며 사실상 무혈입성했지만, 정작 집권여당이 사상 최악의 총선 참패를 겪은 책임에서는 벗어난 모습이었다. 이후 2024년 12월 원내대표에 복귀하며 정치 인생의 정점을 찍는 듯했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에는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또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끌었고 21대 대선 국면에서는 후보 교체 시도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정점을 찍은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21대 대선에서 여당 후보가 패배하자 그는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교 게이트 수사가 그를 옥죄어 왔다. 특검의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찬성 173표로 가결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직접 ‘가’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2023년 3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썼던 것을 근거로 든 행동이었지만, 이 순간이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마지막 표결이 됐다.
법원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서울구치소 수감 생활이 시작됐고 특검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올해 1월 1심 선고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은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질타하며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원심의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고 지난달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상고가 기각되며 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그는 의원직을 잃었을 뿐 아니라 피선거권과 선거권까지 함께 박탈당해 앞으로 상당 기간 투표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구속기간이 그대로 형기에 산입되는 만큼 만기 출소 시점까지 고려하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팔순에 이른 뒤가 된다.
검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변호사 자격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법무부의 등록 취소 명령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는 절차를 밟은 끝에 지난 21일 그의 변호사 등록을 최종 취소했다.
한 정치인의 자격 상실로 열린 문을 통해 국회에 들어선 사람이 자신의 자격 상실로 그 문을 나서게 된 셈이다. 시작과 끝이 이토록 닮은 정치 인생도 흔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그가 복권이나 사면을 통해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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