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 설탕 제조업체로 시작
1970년, 매출 100억 원 달성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쓰는 조미료 중 하나는 설탕이다.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은 1950년대 초반만 해도 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 속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쓰는 설탕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그 시작은 1938년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다. 1953년 이병철 회장은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당시 귀중한 외화가 수입 설탕에 쓰이던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국산 설탕 생산의 필요성을 깨닫고 직접 생산에 나선 것이다. 같은 해 이 선대회장은 제일제당공업(현 CJ제일제당)을 세우고 국내 최초의 설탕 생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설탕 생산을 시작한 직후 CJ제일제당은 제품 가격을 600g당 48환으로 정했다. 수익을 쫓기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외국에서 들여오던 설탕을 국산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 시장에 CJ제일제당이 국산 설탕을 내놓자, 상황은 급변했다. 당시 수입품의 3분의 1 수준 가격으로 공급된 CJ제일제당의 설탕은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고 설탕 수입 의존율은 설립 이듬해 51%로 낮아졌다. 3년 뒤에는 불과 7%로 줄며 막대한 외화를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

설탕 사업의 성공에 이어 이병철 선대회장이 두 번째로 눈을 돌린 분야는 밀가루였다. 내부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제과업 진출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그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제과업에 뛰어들면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자고 영세업자들을 몰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돈만 벌겠다고 기업을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직원들의 우려를 안심시켰다.
설탕 한 스푼에서 시작된 도전은 17년 만에 눈부신 결실을 맺었다. 1970년 CJ제일제당은 연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설탕 생산량은 10만 톤을 넘어섰다. 이후 1973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CJ제일제당은 마침내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당시 기업공개는 아무 기업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매출 성장과 자산 확대는 물론 경영의 투명성까지 입증해야 했다. CJ제일제당은 설립 이후 꾸준한 실적을 쌓아오며 이런 조건을 충족했고 결국 일반 투자자들에게 문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1973년 자본금 19억 원을 기록한 CJ제일제당은 설탕, 밀가루, 조미료 등을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수익성이 가장 높은 핵심 계열사였다. 같은 해 6월 12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기업공개 주식 청약은 그야말로 ‘흥행 대성공’이었다. 20만 주 모집에 무려 717만 4,050주가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주식 청약 경쟁률은 36대 1에 달했다.
150%를 웃도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청약률이 폭발적으로 치솟은 것은 CJ제일제당에 대한 시장의 신뢰와 기대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약 마감 이후에는 투자 열기가 고조되며 청약 창구에 몰린 인파로 인해 사무실 셔터가 흔들리고, 일부는 2층 창문을 통해 진입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한 언론은 CJ제일제당을 ‘삼성의 모태 기업이자, 오늘날 삼성을 재계 정상에 올려놓은 핵심 축’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소비자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소비자와의 소통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으며 신뢰 경영을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은 숫자로 증명됐다. 1970년 106억 2,000만 원에 머무르던 매출은 1978년 1,000억 원을 돌파했고 불과 2년 뒤인 1980년에는 3,000억 원을 초과했다. 그리고 1986년 마침내 CJ제일제당은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하며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후 1992년에는 연 매출 1조 2,600억 원을 달성하며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과 달리 회사 내부에서는 한계를 체감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시 CJ제일제당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이전되었고 이로 인해 신사업에 대한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느끼는 임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93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진짜 성장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같은 해 6월 CJ제일제당은 경영 독립을 본격화하는 핵심 인사를 발표했다. 당시 안국화재 부회장이었던 손경식(현 CJ그룹 회장)을 CJ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삼성전자 이사였던 이재현(현 CJ그룹 대표이사 회장)을 상무로 선임하며 새로운 리더십 라인을 구축한 것이다. 이후 CJ제일제당은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과감한 전략을 펼치며,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맞벌이 가정과 핵가족이 일반화되면서 간편 식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식문화와 소비 흐름에 발맞춰 CJ제일제당은 ‘즉석밥’ 개발을 다짐한다.
1996년 3월 CJ제일제당은 무균 포장 설비 구축에 100억 원이라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즉석밥 시장의 판도를 바꾼 제품 ‘햇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시 직후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15일 만에 판매액이 2억 5,000만 원에 달했고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 5월에는 월평균 매출이 8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그들이 설정한 초기 목표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듬해인 1997년 CJ제일제당은 외식사업에 본격 진출하며 프리미엄 레스토랑 브랜드 ‘빕스(VIPS)’를 선보였다.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이 막 성장하던 시점에서 빕스는 차별화된 메뉴와 서비스로 외식 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

한편, 올해 1분기 CJ제일제당은 국내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을 겪었다. CJ제일제당의 올해 1분기 매출은 4조 3,625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2,463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 7.8% 하락한 수치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해외 식품 부문 매출이 8% 증가해 1조 4,881억 원을 기록하며 회사의 견조한 성장 동력을 유지했다. 일본 시장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냉동 김밥’, ‘K-소스’ 등 제품들이 일본 주요 유통망인 이온(AEON), 코스트코, 아마존, 라쿠텐에서 판매되고 있다.
2023년에 일본에 처음 출시된 ‘비비고 김밥’은 이온과 코스트코를 중심으로 약 250만 개가 팔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CJ제일제당은 국내외 시장에서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며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혁신과 글로벌 시장 확대가 앞으로도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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