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 벌인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에서 패소하면서 약 1,530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생겼다. 배상원금만 약 4,849만 달러에 달하고 여기에 지연이자와 소송비용 등이 더해지는 구조다. 지난 2월 영국 법원에서 원 중재판정 일부 취소를 끌어냈지만, 사건이 다시 중재판정부로 넘어간 지 약 7개월 만에 정부에 불리한 판단이 나온 셈이다. 정부는 판정문을 검토한 뒤 추가 불복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환송중재 판정부는 지난달 30일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원금 약 4,849만 달러와 지연이자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금에 각종 비용을 합친 규모는 약 1억 1,3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쟁점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관여한 행위와 엘리엇이 주장한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환송중재 판정부는 두 사안 사이의 연관성이 인정된다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렸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했지만 같은 해 7월 합병안은 통과됐다. 이후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에 따라 보유 주식 가치가 떨어졌다는 게 엘리엇 측 주장이었다. 엘리엇은 약 1조 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며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 절차에 들어갔다.
약 5년에 걸친 심리 끝에 2023년 원 중재판정부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를 정부에 귀속되는 조치로 보면서 한국 정부가 한·미 FTA를 위반했다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이후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를 요구했다. 지난 2월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을 ISDS에서 국가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원 중재판정을 일부 취소했다. 다만 청와대와 복지부의 행위만으로도 엘리엇의 손해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는 다시 살펴보도록 사건을 중재판정부로 돌려보냈다.

환송중재 결과는 다시 정부 패소였다. 판정부는 정부의 개입이 없었어도 합병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면 정부 고위 인사가 형사책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관여할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배상금 액수를 다시 줄여달라는 정부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정부는 손해액을 새롭게 계산하는 문제는 이번 환송중재에서 다룰 범위를 넘어선다고 봤다. 반대로 엘리엇이 요구한 배상액 증액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원 중재에서 정해진 약 4,849만 달러가 배상원금으로 유지됐다.
다만 이번 결정만으로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 법무부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은 “취소소송이라는 불복 방법이 남아 있다”면서도 “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판정문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법무부 역시 후속 대응 가능성을 열어뒀다. “관계부처,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 등과 판정문을 면밀하게 분석해 중재규칙에 따른 판정의 해석, 정정 또는 추가 판정 신청 등의 후속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영국 법원 판단으로 한 차례 뒤집혔던 배상 문제가 환송중재에서 다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엘리엇 ISDS 사건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앞으로 정부가 판정 취소소송 등 추가 절차에 나설지 여부에 따라 약 1,530억 원 규모의 부담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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