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의 한 시대를 대표해 온 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 향년 74세의 나이로 혈액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고(故) 안성기는 지난해 12월 30일 심정지 상태로 서울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이송된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오랜 시간 스크린을 지켜온 배우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와 관객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해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병이 재발하며 다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투병 중에도 그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근황을 전했다. 2022년 제12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과 2023년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해 관객과 다시 만났지만, 병세가 악화하면서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고인은 연기 인생 전반에 걸쳐 성실함과 절제된 태도로 신뢰를 쌓아온 배우였다. 정상의 자리에 오래 머물렀지만 사생활 논란과는 거리가 멀었고 신의와 예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시나리오를 거절할 때조차 직접 만나 뜻을 전했으며 그는 이를 두고 “그게 살아가는 일이고 예의”라고 말해왔다.
이 같은 태도는 정치적 성향을 넘어 폭넓은 신뢰로 이어졌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가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안성기를 꼽았다는 일화는 그의 대중적 신망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직 제의와 이후 여러 차례 국회 비례대표 출마 제안도 있었지만, 그는 모두 고사했다.
안성기는 “현장에서 제가 얼마까지 갈 수 있는가에 인생을 걸고 있다”라고 밝히며 끝까지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후배들이 긴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남기고 싶다는 말도 여러 차례 남겼다.

1952년 1월 1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난 안성기는 1957년 다섯 살의 나이에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하며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비롯해 아역 배우로 약 70편의 작품에 출연한 그는 중학교 시절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한동안 연기를 멈췄다.
이후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하며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군 제대 후 1977년 ‘병사와 아가씨’를 통해 다시 배우의 길로 돌아왔다. 성인 배우로 자리 잡은 이후 그는 한국 영화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시작으로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시리즈,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과 ‘부러진 화살’,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와 ‘실미도’ 등 수많은 작품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남았다. 최근에는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에 출연해 노장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한국 영화의 성장과 함께해 온 안성기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실함과 품격으로 쌓아 올린 그의 연기 인생은 작품과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전망이다. 그의 장례는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되며 영화인 후배이자 같은 소속사 동료인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운구를 맡을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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