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 설립
1991년 해체 위기
1997년 부도 처리

과거 ‘부동산 재벌 3인방’으로 불리며 건설업과 부동산업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던 한보그룹은 1997년 순식간에 부도 처리됐다. 한때 18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던 한보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한보그룹의 시초는 1969년부터 시작된다. 1951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정태수는 1969년 가을 한 점쟁이로부터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할 것이다”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재계에 따르면 그는 평소 이름도 점쟁이의 조언으로 태준에서 태수로 바꿀 정도로 역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점쟁이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믿은 그는 한 점쟁이의 말에 따라 ‘흙’과 관련된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정 전 회장은 등산을 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태수 전 회장은 일제강점기 폐광으로 방치돼 있던 강원도의 몰리브덴 광산을 발견해 이를 헐값에 사들인 뒤,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해 수출 중심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1975년 정태수 전 회장은 구로구에 영화아파트를 건설해 수익을 올린 뒤 1979년 9월에는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지어 부동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정태수 전 회장은 은마타운의 성공적인 분양을 발판 삼아 19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한 뒤 ‘한보종합건설’로 이름을 바꾸고 해외 건설 시장에 진출했다.
그는 이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상가 등 다양한 분야로 계열사를 확장했으며, 골프장은 물론 은행관리업체였던 태화방직까지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1984년 정태수 전 회장은 금호철강을 인수해 훗날 IMF 사태의 도화선이 된 한보철강을 설립하게 된다. 1986년을 기점으로 한보그룹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철강 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 분야에서 적자가 이어졌고 재무 구조는 갈수록 심각하게 악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태수 전 회장은 감원과 계열사 매각 및 합병 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조치를 통해 자금을 확보했다.

정태수 전 회장은 이 자금으로 강남구 수서·대치 일대의 개발제한구역 토지를 매입한 뒤, 대규모 로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태수 전 회장은 막대한 수준의 자금을 정·관계 인사들에게 건넸으며, 이에 해당 부지를 택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즉, 강남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알짜배기 땅으로 여겨지던 수서·대치 지역의 공공용지 3만 5,500평이 마침내 정태수 전 회장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보그룹은 해체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일원동 일대 택지개발지구의 토지를 특정 개발조합에 불법적으로 분양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이 사건은 제6공화국에서 가장 큰 비리 사건으로 꼽힐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노태우 정권의 비호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주력 사업이었던 주택 부문에서 손을 떼야 했고, 정태수 전 회장 역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1993년 그는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복귀한 후 기존의 건설 사업에만 의존하던 한보그룹은 상아제약을 인수하고, 시베리아 가스전을 확보해 개발하며 철강 사업에 집중하며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다. 또한 그는 영상 프로덕션 ‘한맥유니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정태수 전 회장은 부실 건설업체 유원건설과 계열사 4개를 함께 인수하여 주택 부문에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그해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정태수 전 회장은 구속되었다.
3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정 전 회장은 한보철강을 통해 대규모 추가 금융 지원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는 한보철강이 아산만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철강 호황기를 맞아 급격히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당진 제철소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한보그룹의 몰락은 예견됐다. 업계에 따르면 당초 2조 2,800억 원을 예상하고 시작한 제철소 건설 투자금이 2년 만에 5조 7,000억 원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한보그룹은 18개의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확장을 진행했다.

결국 외부 차입금이 5조 원에 달하는 취약한 재무 구조로 인해 제철소 완공 이후에도 적자 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금융기관들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1997년 1월 한보는 결국 부도 처리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IMF 관리 체계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삼미그룹과 진로그룹이 부도 유예에 들어갔고 5월에는 대동주택, 7월에는 기아그룹 등 연쇄적인 부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정태수 전 회장은 1997년 1월 31일 구속됐으며, 공금 횡령과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5년 5개월의 복역 후, 2002년 정 전 회장은 고혈압 등 지병을 이유로 병보석 석방되었으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 원을 횡령해 다시 구속되었다. 정태수 전 회장은2007년 2심 재판이 진행되던 중 병 치료를 이유 삼아 일본으로 가겠다고 주장하며 출국금지 처분의 집행정지를 받아낸 정태수 전 회장은 결국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에콰도르 등지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오랜 도피 생활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던 정 전 회장은 2018년 과거 한보그룹 사태와 함께 재조명됐다. 정태수 전 회장의 아들 정한근이 아버지 정태수가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한근은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정태수의 사망 증명서, 키르기스스탄 국적 위조 여권, 유골함 등을 증거로 내밀었다. 이에 검찰은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사망확인서 등 서류가 진본이라는 사실 확인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한때 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던 한보그룹은 창업주의 무리한 사업 욕심과 취약한 재무 구조의 문제점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댓글5
송정현
댓글을 달아도 계속해서 지워 지는데 무슨 댓글란을 실지마라!
송정현
그럼 멋지고 질한다고 할까나?....안그러우? 맹이씨?....ㅋㅋㅋㅎㅎㅎ
김철수
지은 죄를 아니라고 하면 쓰겠는가?....맹아! 맹아! 찌재맹아!
송정현
죄를 지었으면 죄의 댓가 만큼 처벌을 받는 것이 국민으로써 도리이며 의무이고 또한 책무인 것을 지금까지 지은 죄를 아니라고 속임수로 여기까지 온 이재맹이는 과연 무슨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일려고 얄궂은 술책을 꾸미고 있을까요?.......
그래서 결론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