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미경 부회장
드림웍스 3,000억 원 지분 투자 성공
문화 사업 주도해 한국 영화 발전 이끌어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에서 열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영화예술대학(USC School of Cinematic Arts) 2025년 졸업식에 한국 기업인이 연사로 초청됐다.
랭글리 회장은 “탁월한 안목으로 인재를 발굴하고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프로듀서이자,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커넥터(connector), 우리가 무엇을 듣고, 보고, 사랑하게 될지를 이끄는 비저너리 리더(visionary tastemaker)“라며 그를 소개했다. 도나 랭글리(Donna Langley) NBC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스튜디오 회장의 소개로 단상에 오른 이는 바로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이 졸업 연설을 한 USC는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메키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 등을 배출한 미국 서부 지역 최고의 영화 명문 학교다. 그렇다면 이미경 부회장은 어떻게 이러한 학교에서 졸업식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1993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손자였던 이재현 회장에게 설탕과 밀가루 등을 수입해 팔던 제일제당을 계열에서 분리해 줬다. 당시 이 회장이 물려받았던 제일제당은 문화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식료품 및 제조 기업이었다. 그러나 평소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던 이재현 회장은 기업의 사업 분야를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사명을 제일제당에서 CJ로 변경한다.

CJ그룹이 본격적으로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1995년 4월, 영화사 드림웍스에 투자를 결정하면서부터다. 드림웍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주도해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해고당한 제프리 카첸버그, 음반 제작업자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세운 회사다.
사업 초창기였던 당시 드림웍스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전 세계에서 투자자를 물색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문화 산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참여했고, 여기에는 CJ그룹의 이재현·이미경 남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는 달리 창업자들의 성향을 파악해 드림웍스의 벽을 허물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스필버그와 만나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이재현 회장은 청바지 차림으로 찾아가 사업 계획을 논하는 등 격식을 깨고 접근했다.

그 결과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제치고 3억 달러 투자를 성사했다. CJ그룹은 지분을 확보하고 아시아 배급권을 따내며 드림웍스의 초기 투자자로 합류했다. 투자금 3억 달러(약 3,000억 원)는 당시 자산 1조 원 규모에 불과한 CJ제일제당의 연간 매출의 20%에 해당했다.
이 때문에 CJ가 드림웍스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망하기 위해 뛰어드는 자충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문화콘텐츠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미경 부회장은 CJ그룹의 미디어 산업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거나, 영화에 투자하고 배급하는 활동을 이어 왔다. 1996년 해외 기업들과 함께 CGV를 설립했고, 1997년 케이블TV 엠넷(Mnet)을 인수해 방송 채널을 확보했다.

1998년에는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을 설립하며 한국 최초로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CJ그룹이 문화산업에 투자한 금액만 7조 5,000억 원에 이른다. 이에 CJ그룹은 ‘K-컬처’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 4월 블룸버그는 한 기사에서 “K-드라마의 성공은 하룻밤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CJ ENM의 역할과 비전을 조명하기도 했다. 2020년 한국 영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기생충’의 흥행과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업계에서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에미상 공로상,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필러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또한, 해외 매체에서 미디어 산업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명단’ 등에도 꾸준하게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이 부회장은 2013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미디어 사업부에서 그룹 전반의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러나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인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건강상 등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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