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노동 현장에서 수배 생활까지 감수하며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국회에 입성한 뒤에는 진보정당 최초의 기록을 잇달아 세우기도 했다. 이는 2024년 총선을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의 이야기다.
심 전 의원의 정치적 뿌리는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남성 중심의 운동권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심상정 전 의원은 여성들을 조직해 별도의 연합 활동을 펼치며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가 만들어진 뒤에는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0~1990년대 심상정 전 의원은 활동 무대를 노동 현장으로 옮겼다. 그는 구로동맹파업을 비롯한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차례 수배됐으며, 서울노동운동연합과 금속노조 등에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심 전 의원은 노동계를 대표하는 여성 운동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제도권 정치에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그는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경기 고양 덕양갑을 기반으로 제18·19·20·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며 진보정치의 주요 인물로 성장했다.
심 전 의원의 정치적 여정에는 고(故) 노회찬 전 의원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등에서 함께 합을 맞췄다. 또한 이들은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정의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심 전 의원은 이후 진보정당 소속 최초의 4선 의원이자 지역구 3선 의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어 지난 2017년 1월 19일 심 전 의원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당시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최종적으로 6.17%를 확보했다. 이는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었던 3.9%를 넘어선 수치로, 당시 민주화 이후 진보정당 대선 후보 최고 득표율로 기록됐다.
하지만 지난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은 심상정 전 의원 정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고양갑에서 4선에 도전한 심 전 의원은 18.41%를 얻어 3위에 머물렀다. 녹색정의당 역시 비례대표 득표율 3%를 넘지 못하면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이에 따라 선거 다음 날인 같은 해 4월 11일 심 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저는 21대 국회의원 남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25년간 진보정치 소임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심상정 전 의원은 총선 패배와 진보정당의 원외 추락에 대해서도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심 전 의원은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중심에 서 왔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에게 세 차례 지역구 의원으로 일할 기회를 준 덕양 주민들을 향해서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계를 떠난 뒤 심 전 의원은 선거와 당권 경쟁 등 정치 현안의 전면에서 한발 물러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8일 그는 서울 종로구 노회찬의집 6411에서 열린 ‘자유인‧문화인‧평화인 노회찬 8주기 추모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정치적 동반자였던 노 전 의원을 기리는 자리에 함께한 것이다.
2004년 국회 입성부터 2024년 은퇴까지 진보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심 전 의원은 이제 국회의원이 아닌 시민 신분으로 정치권 밖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향후 심상정 전 의원의 정계 복귀 여부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댓글8
양재욱
화관법과 화평법은 대표적 화학업계 절멸법 이로인한 엄청난 폐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 몫. 심사 숙고 없이 이뤄진 모든 책임은 영원할듯.
김영수
원리 원칙이 사라지게 한 최초의 여성 정치인!!
정론
심상정이 댁들한테 그런 막말 들을 만큼 살지 않았다. 치열한 삶이었다. 쓰레기 같은 말은 곧 당신들에게 향해 갈 것이다.
슬슬 복귀하려고 관심 끄는 중
심상정은 사악한 여인입니다.
자신의 재산증식과 이익을 위해 모든지 다하는 여자이죠. 공사를 구분 하는 척만 할뿐 위선의 극치를 달리는 쓰레기와 동격인 여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