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 1939년 설립
1974년, 첫 해외지점 세워
2000년, ‘e편한세상’ 런칭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 많은 이들이 브랜드 아파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리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 브랜드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바로 DL이앤씨다. 국내 최고 건설사로 꼽히는 DL이앤씨는 단순한 건설사를 넘어 주거 문화의 기준을 새롭게 세운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 뿌리는 무려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재준 창업주는 인천 부평역 인근에 ‘부림상회’라는 이름의 작은 상점을 열었다. 이것이 DL이앤씨의 시초다. 당시 이들은 자본금 3만 원과 종업원 7명으로 출발한 작은 기업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창업 8년 만인 1947년 직접 벌목 사업에 나설 정도로 성장했고 같은 해 사명을 ‘대림산업’으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건설사로의 변화를 선언했다. 대림산업의 변신은 빠르고 뚜렷했다. 대림산업은 건설사로서 처음으로 부평경찰서 신축공사 수주를 맡았다. 해당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대림산업은 국내 건설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갔고 이후 각종 대형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며 기반을 다졌다.

이들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을 해외로 확장해 나갔다. 1960년대 대림산업은 국내 건설사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해외 진출은 낯설고도 도전적인 행보였지만, 대림은 그 길의 선두에 섰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대림산업은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 항타 공사를 수주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건설의 포문을 열었다. 발주처는 미 해군시설처(OICC)였으며 수주 금액은 87만 6,000달러에 달했다. 이는 당시 대림산업에 매우 의미 있는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였다.
해당 계약을 기점으로 대림산업은 한국 건설사 해외 진출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후 이어지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기반을 마련했다. 같은 해 대림산업은 또 한 번 의미 있는 해외 프로젝트를 따낸다.

이번에는 KCA(미군조달청)가 발주한 괌(Guam) 유황도 내 유조 탱크 설치 공사였다. 수주 금액은 11만 6,183달러에 달했다. 당시 대림산업은 착수금 4만 5,000달러를 한국은행에 송금하면서 한국 건설업계 최초로 ‘외화 획득 제1호’라는 기록을 남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공사 수주를 넘어 해외 건설을 통해 실제 외화를 국내로 들여온 첫 사례로 대한민국 건설 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대림산업의 해외 진출은 단순히 몇 건의 수주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대림산업은 당시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했던 중동 시장에 대한 도전은 대림의 개척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대림산업은 한국 건설사 중 가장 먼저 중동 시장의 문을 두드린 기업이었다. 이들의 선도적인 진출은 곧 ‘중동 붐’으로 이어졌고 1973년 중동 진출에 성공한다. DL이앤씨는 아람코가 발주한 정유공장 공사를 따낸 것으로 전해진다.
DL이앤씨의 해외 진출은 동남아와 중동에 머무르지 않았다. 1975년 DL이앤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사 최초로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DL이앤씨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진정한 글로벌 건설사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같은 해 국회의사당 준공도 완료하며 국가 주요 랜드마크 건설에 뚜렷한 발자취를 새겼다.

DL이앤씨가 진출한 국가는 전 세계 35개국에 달하며 플랜트, 댐, 도로, 항만, 공공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글로벌 인프라 시장의 중심에서 존재감을 이어갔다. DL이앤씨의 해외 활약은 기업의 성장을 넘어 한국 건설 산업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창업주 이재준 창업주가 있었다. 이 창업주는 1976년 해외 건설을 통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안전관리 경연대회에서 한국 기업 최초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DL이앤씨는 물론, 대한민국 건설 기술과 관리 능력의 우수성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DL이앤씨는 국내 최초로 브랜드 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건설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이 최초로 선보인 브랜드 아파트는 2000년 1월 경기 용인시 보정동의 ‘e편한세상’이다.
물론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1999년 ‘래미안’이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상표 등록하며 브랜드 아파트 시장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분양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건 DL이앤씨였다. ‘e편한세상’은 이름 그대로 합리적이면서도 편안한 주거 공간을 앞세워 이후 브랜드 아파트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된다. 같은 해에 국내 최초의 강합성 사장교인 ‘서해대교’를 완공한 데 이어, 2003년에는 독자 기술로 만든 첫 사장교 ‘삼천포대교’를 건설했다. 2012년에는 냉난방 에너지를 50% 절감하는 기술을 적용한 국내 최초의 상용화 아파트 ‘e편한세상 광교’를 선보였다.

2013년에는 국내 최장의 현수교 이순신대교 준공했으며 순수 국내기술로 세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DL이앤씨는 구설에 오르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가장 크게 이슈가 된 것은 2016년 이해욱 당시 부회장의 수행 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수행 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반복했고 이에 항의하거나 견디지 못한 운전기사들이 40명 이상 교체됐다고 알려졌다.
이에 당시 회장이었던 이해욱 회장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상처받은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당시 이 회장은 법원으로부터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DL이앤씨는 또 한 번 건설 현장 사고로 곤욕을 치렀다. 하청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안전 문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특히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 현장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벌써 8번째 사망 사고로 집계된다.
아울러 2023년에는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일주일 만에 또 한 차례의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DL이앤씨는 오랜 역사와 글로벌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그룹이다. 이에 앞으로 이들의 행보와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신뢰 구축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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