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사망도 보험료 청구
유족들 “형평성 어긋나”
공단 “일할 계산 어렵다”

지난달 1일 오전, 지방에 거주하는 A 씨는 90대 부친을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이후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던 중,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고지서를 받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망한 아버지에게 14만 2,130원의 건강보험료와 1만 8,430원의 장기요양보험료가 부과된 것이다.
A 씨는 “첫날 사망했는데 한 달 치 보험료를 다 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건보공단은 “관련 민원이 많지만 제도상 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료는 ‘월 단위’로 부과된다. 건강보험 자격은 사망일의 다음 날 상실되므로, 1일에 사망하더라도 자격이 하루라도 있었기 때문에 해당 월의 전체 보험료가 청구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매년 적지 않은 수의 사망자들에게 한 달 치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실제로 건보공단은 지난 12일, 2023년 한 해 동안 사망자 30만 2,035명(의료급여 대상자 약 5만 명 제외)에게 총 22억 5,000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직장가입자의 본인 부담분만 포함한 것으로, 별도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피부양자는 제외됐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세대를 기준으로 부과되기에, 개인별 계산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단독 세대만 포함된 수치다. 이에 따라, 실제 사망자에게 부과된 건보료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일 사망자의 경우, 9,845명이 총 7,500만 원을 납부했고, 2일 사망자는 1만 63명이 8,900만 원을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초 사망자만 보더라도, 열흘 동안 사망한 이들이 낸 보험료 총액은 약 7억 2,200만 원에 이른다.

이 같은 방식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루만 살아 있어도 한 달 전체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보험료를 하루 단위로 나누는 ‘일할 계산’은 행정 부담이 크고, 전체 보험 체계에 과도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공단에 따르면, 보험료 산정 시 일할 계산을 도입할 경우 자격변동 사유마다 개별 산정과 고지가 필요해 행정 복잡성이 급증한다. 지역보험료는 주민등록상 세대 단위로 부과돼 사망, 전·출입, 출입국 등의 사유 발생 시 보험료가 변경된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주민등록상의 전출입, 사망 등의 자격변동 건수는 약 1,300만 건에 달했고, 직장과 지역 간 자격 변경은 6,600만 건을 넘어섰다. 여기에 민원 증가까지 고려하면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자격, 부과, 징수와 관련된 민원이 연간 4,500만 건에 이르고 있어, 보험료를 일 단위로 계산하게 되면 민원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전산 시스템의 발전 여부와 상관없이, 보험료 산정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행정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월 단위 부과 방식은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건보공단은 보험료 일할 계산이 항상 가입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피부양자가 소득 증가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경우, 현재는 다음 달부터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일할 계산을 적용하면 해당 월부터 납부해야 하는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국외 체류에서 복귀했거나 보험료 경감 대상에서 해제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은 사회보험 제도로, 가입자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의료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자격이 존재한 이상 납부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비 청구 이후 실제 의료 이용 여부를 파악하려면 통상 6개월가량이 소요돼 이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이의신청이 접수될 경우에는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해 인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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