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고의적으로 체납액을 줄이기 위해 불법적인 방식으로 고액 체납자의 국세징수권을 소멸시켰다는 감사 결과가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누계 체납액 축소를 목표로 한 ‘수치 맞추기식 행정’이 결국 거대한 역풍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감사원은 “국세청이 2021년부터 총 1조 4,268억 원의 국세채권을 위법·부당하게 소멸시켰다”라고 밝혔다. 특히 2021년 국세통계포털을 통해 누계체납액을 공개하기 전 국회로부터 비판 여론을 피하기 위해 체납액을 100조 원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내부 계획에 따라 전국 지방청에 축소 목표를 할당한 정황도 확인됐다.
감사원은 국세청이 고액 체납자에 대한 관리도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청은 한 고액 체납자가 고급 외제차를 타고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고급 주택에서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출국금지 요청이 있을 때마다 이를 풀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체납자의 아들 역시 3차례 출국금지 해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압류된 와인과 명품 가방 등 고가 물품도 임의로 해제해 준 사례가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국세청은 체납액 축소를 위해 소멸시효 기산일을 ‘압류해제일’이 아닌 ‘압류일’이나 ‘추심일’ 등 과거 시점으로 소급하도록 지침을 내려 실제 법령과 상반되는 방식으로 수치를 조작했다.
이를 통해 2021년 한 해에만 1조 1,891억 원의 체납액이 위법하게 소멸했고 이후 2년간도 같은 방식이 이어져 2021~2023년 총소멸 금액은 1조 4,268억 원에 달했다.
서울청은 체납 실적이 미달하자 2021년 3월 고액 체납자들의 부동산 압류를 해제하고, 이를 ‘압류일’ 기준으로 소급 처리해 체납액 1,031억 원을 소멸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일선 세무서에서 “부당하다”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본청은 “서울청 자체적으로 실시한 일”이라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고액·상습 체납자 1,066명의 체납액 약 7,222억 원도 이런 방식으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들 중에는 명단 공개 대상자 5,905명, 재산 은닉 혐의자 354명 등 ‘중점관리 대상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국세청의 조직적 축소와 봐주기 행위는 단순한 행정 편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 인원에게는 경고성 조치가 내려졌고 일부 실무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징계 요구가 내려진 상태다.
이와 같은 파장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세청은 오는 3월 출범 예정인 ‘국세 체납관리단’ 운영을 위한 기간제 근로자 500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밝혔다. 체납자 실태 확인을 위한 전화 및 방문 조사원으로 구성된 이 인력은 3월부터 10월까지 주 5일, 하루 6시간 근무하며 실태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세청은 체납징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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