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숙원사업이던 삼성자동차가 실패한 현실 이유

삼성그룹 자동차 부문 진출
이병철·이건희 회장 숙원사업
출범 직후 IMF로 자본 잠식 빠져

삼성그룹이 처음으로 실패한 사업으로 꼽히는 ‘자동차 사업’이 재조명받고 있다. 이는 올해 4월 르노코리아가 앰블럼을 변경하면서 ‘삼성자동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1938년 설립된 삼성그룹은 1970~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재계 서열 1위는 현대그룹이었다. 당시 삼성그룹은 럭키금성(현재의 LG), 대우그룹 등과 함께 치열한 2~3위 경쟁을 벌였다.

이 시기 삼성그룹은 전자 부문을 비롯해 금융, 유통, 의류, 식품, 서비스, 스포츠 등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해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룹 내에서 현대그룹을 누르고 재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돌파구로 자동차 제조업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의 자동차 제조업 진출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자동차 사업의 경우 성공한다면 재계 서열을 바꿀 정도로 큰 규모이며, 삼성그룹과 같은 역량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모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분야의 경우 삼성그룹의 설립자인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더하여 이건희 회장이 상당한 자동차 마니아였다는 사실 역시 삼성그룹의 모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의 준비 끝에 삼성그룹은 지난 1992년부터 사내에 자동차 사업 추진팀을 꾸려 부산 강서구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계에 따르면 이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을 세우기로 한 부지는 매립지나 다름없는 입지로, 지반이 약했으며 이를 보강하기 위한 기초공사에선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삼성그룹이 이 지역에 공장을 설립한 이유는, 이곳이 항구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각종 원자재 수입을 비롯해 완성차의 수출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정계에는 삼성그룹이 부산 지역의 발전에 신경을 쓰던 김영삼 정부의 호감을 얻기 위해 부산을 입지로 선택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당시 한국 시장에는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4개나 되는 완성차 기업이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반면 삼성그룹의 경우 자동차 제조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거의 없었기에 시장 점유율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삼성그룹은 지난 1994년 일본 자동차 제조사인 닛산(Nissan)과 제휴를 맺어 협력에 이어갔다.

삼성그룹은 1995년 3월에 삼성자동차 법인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이후 1998년 3월, 드디어 첫 번째 양산 차량인 ‘SM5’를 출시하여 본격적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그룹은 자동차 사업에 대한 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공장 건설을 비롯해 기술 제휴, 인력 확충 등의 기본적인 사업 준비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여 투자금 회수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SM5가 출시될 무렵인 1997년 말에 외환 위기 및 IMF 구제금융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침체했다.

이에 삼성자동차 역시 출범 직후 자본 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삼성자동차는 지난 1999년 6월, 막대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0년 7월 삼성자동차는 프랑스의 완성차 업체인 르노에 인수되어 법인명을 ‘르노삼성자동차’로 변경했다. 이름에 ‘삼성’을 남겨두긴 했지만, 일부 지분을 보유한 것 외에 경영 면에서 삼성그룹과 르노삼성자동차의 관계는 완전히 분리된 상태였다.

이후 올해 4월 르노코리아는 엠블럼과 사명을 바꾼다고 밝히며 사명을 기존 르노코리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떼어내고 르노코리아로 단순화했으며, 엠블럼은 글로벌 엠블럼인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