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식품 박승복 회장
전국 경제인연합 가입 권유
“중견기업의 범위 넘을 수 없어”
국내 최초의 CM 송인 “보고는 몰라요~들어서도 몰라요~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의 CM 송은 광고의 공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간장=샘표’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당시 ‘장은 집에서 담그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누구나 장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리기 위해 샘표가 간장 광고에 공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샘표는 현재까지도 국내 간장 시장 판매량 55.6%를 차지해 78년간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단 한 번도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샘표는 박규회 회장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를 이어받은 박승복 2대 회장은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설득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가입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복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설득에도 전경련 가입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샘표의 창업주인 故 박규회 회장은 해방 직후 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같은 처지의 피난민들에게 장을 제공하기 위해 1946년 회사를 설립하고 ‘샘표 간장’을 출시했다. 당초 간장이 집에서 담가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시하던 시절 ‘사 먹는 간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샘표식품은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진하고 구수한 맛을 가진 간장’이라는 의미를 담은 ‘샘표 진간장’을 선보이는 등 제품 다각화에도 힘쓴 샘표 식품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샘표 식품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샘표식품은 박규회 창업주의 사후 아들 박승복 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했다.
그러나 1985년 무허가 간장 업체가 불량 원료를 사용해 비위생적으로 제조한 간장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간장 불매 운동을 벌인 일명 ‘간장 파동’ 사건이 일어나며 곤욕을 겪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류 업계는 물론 당시 간장 업계 1위였던 샘표 역시 매출이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샘표는 당시 기업 대표였던 박승복 사장을 TV 광고에 출연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 광고를 통해 박승복 사장은 주부들의 공장 견학을 제안해 공장을 소비자에게 공개하고 위생적으로 제품을 제조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홍보했다.
이어 주부들의 공장 견학에는 작업복 차림의 박승복 사장이 동행해 직접 확성기를 들고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등 간장 파동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수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샘표는 박승복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는 제조 공정이 잘 갖춰진 식품기업이라는 인식을 얻게 됐고, ‘간장 파동’ 이전보다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급화 전략을 꾀한 샘표는 고급 간장 개발에 성공했다. 1989년 ‘샘표 양조간장 501’을 선보인 샘표는 높은 실적을 기록하며 1위 자리를 고수해 나간다. 박승복 회장은 샘표의 1대 박규회 창업 회장의 “내 가족이 안 먹는 것(못 먹는 것)은 만들지 말라”는 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샘표를 이끌어왔다.
1976년 샘표가 중견기업 수준으로 진입하고 샘표식품이 몸집을 불렸던 시기 전경련 정주영(鄭周永) 회장이 박승복 회장을 향해 전경련 회원 가입을 권유하자 스스로 중소·중견기업의 범위를 넘을 수 없다면서 끝내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박승복 회장의 겸손을 두고 “진정한 이 시대의 기업인”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한편, 박승복 회장의 뒤를 이어 샘표의 경영을 맡고 있는 박진선 대표는 지난 2020년 ‘제6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내실 경영과 과감한 혁신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국내 식품 산업의 저변을 확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박진선 대표가 이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음으로써 2000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아버지 고(故) 박승복 회장에 이어 2대째 산업계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진기록을 세워 업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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