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회장’으로 불리며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도 모든 도전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한 경험이 존재한다. 특히 정 회장의 인생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와 대북사업은 대표적인 실패로 꼽힌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던 대북 경협 사업은 그룹의 명운을 건 승부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에 큰 부담을 남겼다. 재계 거인의 마지막 승부로 불렸던 이 사업은 왜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까.
정주영 회장의 대북 행보는 고향 통천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이 1998년 6월 16일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는 장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그는 소에 대해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라고 적었다. 그의 ‘종잣돈’ 역시 소를 팔아 마련한 70원이었다.
정 회장은 이후 1989년 이산가족 방문단을 통해 고향을 찾은 뒤 향수에 잠겼다. 그러나 소 떼 방북 이후에도 남북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과 묵호 무장간첩 침투 사건, 1999년 서해교전 등으로 대북 여론은 악화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몽구와 정몽헌 형제간 갈등, 이른바 ‘왕자의 난’까지 겹치는 등 그룹 내분이 불거져 기업의 상황 또한 악화됐다. 북한의 정책 변화와 국내 정치 환경,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북사업은 점차 동력을 잃었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남북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 민간기업으로서 남북 경제협력을 선도했다. 1998년 1,000여 마리의 소를 이끌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현대아산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은 초기 자본금 1,000억 원으로 출범해 2000년까지 5차례 유상증자를 거쳐 총자본금 4,500억 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해당 금액은 실제 대북 투자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실제 대북 투자에는 금강산 사업권 대가 4억 9,000만 달러, 관광시설 투자 3억 8,000만 달러, 7대 SOC 독점 사업권 대가 5억 달러, 개성공업지구 투자 3,300만 달러 등 자본금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 사용됐다.
현대는 총 14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전력·통신·철도·통천비행장·임진강 댐·금강산 수자원 사업과 백두산·묘향산·칠보산 관광사업 등 북한 7대 SOC 사업에 대한 30년 독점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속된 적자와 유동성 위기, 대북 송금 비리 사건 등이 겹치며 그룹은 큰 타격을 입었다. 정주영 회장에 이어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정몽헌 회장도 부담 속에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2001년 3월 21일 정주영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북한의 문을 열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했던 대북사업은 그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끝내 완결을 보지 못했다. 이후 2년여 뒤 정몽헌 회장도 세상을 떠나며 현대의 대북 경협 구상은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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