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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외치며 도입했던 제도

박서현 기자 조회수  

출처:삼성전자 제공

1993년 삼성에 등장한 ‘7·4제’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근무제였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직후 도입한 제도로, 국내 기업의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출근 시각을 앞당기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퇴근 이후 시간을 자기 계발과 가족생활에 활용하도록 해 임직원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구상이었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회사 연혁에도 1993년은 삼성그룹이 ‘신경영’을 선언한 해로 기록돼 있다.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존 경영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신경영을 제시했고 이후 조직과 인사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추진했다. 7·4제 역시 이런 흐름에서 나온 대표적인 근무제도였다. 오늘날의 ‘워라밸’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시대적 차이가 있지만, 근무 이후 개인에게 시간을 돌려준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다.

7·4제에는 인재를 바라보는 이 회장의 생각도 반영됐다. 그는 한 분야의 전문성에만 머무르는 ‘I자형 인재’보다 자신의 전문성을 갖추면서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이해하는 ‘T자형 인재’를 강조했다. 회사 업무를 일찍 끝내고 남은 시간을 외국어 공부나 운동 등 다양한 활동에 사용하면 임직원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해진 시간만 회사에서 보내는 방식보다 업무 밖에서 얻는 경험도 인재 육성에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오전 7시 출근은 모든 임직원에게 편리한 방식이 아니었다. 이른 시간에 회사에 도착해야 하는 만큼 장거리 통근자에게 부담이 생겼고 외부 거래처와 업무시간이 맞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제조 현장처럼 근무시간을 일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조직도 있었다. 특히 오후 4시 퇴근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출근만 빨라져 실제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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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제도가 처음부터 2002년까지 모든 조직에서 동일하게 유지된 것도 아니다. 2002년 당시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2000년부터 계열사별 업무 특성에 따라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7·4제는 상당수 조직에서 이미 사실상 사라졌었고,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인근에 있었던 구조조정본부와 삼성전자 및 삼성SDI, 삼성물산 본사 등 일부 직원에게만 유지되는 중이었다. 삼성은 2002년 3월 이를 전면 폐지하고 해당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변경했다. 1993년 시작된 제도가 약 9년 만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따라서 7·4제를 단순히 ‘성공한 워라밸 제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출근 시간을 일괄적으로 앞당기는 방식은 통근과 외부 업무 등 현실적인 문제를 만들었다. 더하여 실제 운영 과정에서도 한계가 확인됐다. 반면, 근무시간과 개인의 시간을 분리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려 했다는 문제의식은 이후 기업들의 근무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간에 모두 출근하는 방식보다 업무 특성과 구성원의 상황에 맞춰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환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는 점이다.

2026년 현재 삼성전자의 근무제도는 과거 7·4제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공식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임직원이 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한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재택근무제도 두고 있다. 1990년대처럼 회사가 하나의 출퇴근 시간을 일괄 지정하는 방식에서 구성원이 일정 범위 안에서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다. 그가 추진했던 7·4제 역시 20여 년 전에 종료돼 현재 삼성의 근무제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이 실험은 한국 기업이 근무시간과 업무 효율, 자기계발의 관계를 일찍 고민했던 사례로 남아 있다. 오후 4시 퇴근이라는 방식 자체는 사라졌지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곧 성과라는 관행을 바꾸려 했던 문제의식은 이후 달라진 근무제도를 통해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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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기자
psh@mobility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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