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한 차례도 손질되지 않았던 간첩법이 73년 만에 개정 문턱에 섰다. 국가 기밀과 첨단기술이 적국뿐 아니라 외국이나 이에 준하는 단체로 유출되는 행위까지 처벌 범위를 넓히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통과를 눈앞에 두게 됐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회는 25일 본회의에서 간첩죄 적용 범위를 구체화하고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본회의에서는 무제한 토론이 진행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필리버스터를 종결한 뒤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현행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를 ‘적국을 위하여 적국의 지령이나 사주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로 구체화했다. 더불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하여 외국 등의 지령이나 사주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형량도 구분했다. 적국 대상 간첩죄는 사형이나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외국 등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적용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북한뿐 아니라 우방국을 포함한 외국으로 국가기밀이나 국가 첨단기술을 유출한 경우에도 간첩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외국 기업 등 ‘이에 준하는 단체’에 대한 기술 유출 역시 간첩죄로 다뤄질 수 있다.
그동안 적국으로 범위를 한정한 탓에 제3국으로의 기밀이나 핵심기술 유출은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지난해 국내 한미 군사시설과 주요 국제공항에서 전투기 사진을 촬영하다 적발된 10대 중국인은 간첩법이 아닌 형법상 일반이적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2024년에는 삼성전자의 국가핵심기술인 D램 공정 기술을 부정 사용해 20나노 D램을 개발한 혐의로 중국 반도체 회사 청두가오전 대표와 개발실장이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산업기술 보호법의 법정형은 15년 이하로 간첩죄보다 낮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냉전체제 종식 이후 국제 정세가 다변화하고 첨단기술이 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처벌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북한을 위한 유출이 입증되지 않으면 간첩죄 적용이 어려운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2010년대 이후 관련 개정안 발의가 계속됐고 21대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에서 간첩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당시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이 반대해 무산됐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당은 처벌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우려 등을 고려해 신중히 논의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2대 국회 출범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김병기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고 같은 해 12월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했다. 본회의 처리 여부에 따라 간첩죄 적용 범위는 73년 만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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