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 이후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관심이 삼성그룹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약 40조 원 규모 거래가 성사되면서 삼성전자에서도 비슷한 초대형 자본시장 거래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ADR 발행 계획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고 9월 들어 관련 가능성도 한풀 꺾인 상태다.
IB업계가 삼성전자 ADR에 관심을 보인 배경에는 SK하이닉스 거래에서 발생한 막대한 수수료가 자리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ADR 1억 7,790만 주를 주당 149달러에 발행한 바 있다. 전체 조달액은 약 265억 달러로, 한화 기준 약 40조 원이다. 공동대표주관사에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JP모간,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이름을 올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에 나온 전체 ADR 인수수수료만 3,888억 6,845만 원이다. 발행 규모의 약 0.9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업계에서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JP모간이 각각 1,000억 원 안팎을 확보했고 그중 절반가량이 한국법인 몫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고 있다.
500억 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규모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약 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씨티글로벌마켓증권에는 연간 영업이익의 60%를 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약 1,380억 원이었던 JP모간과 비교해도 3분의 1을 웃돈다. 한 번의 초대형 거래가 IB 입장에서는 놓치기 어려운 시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 주관사 경쟁에서 밀린 IB들을 중심으로 다음 대형 거래를 찾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삼성전자가 자연스럽게 후보로 부상했다. 삼성전자와 거래 관계가 있거나 그룹 내부 사정을 아는 금융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ADR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접촉도 잇따랐다. 결국 관련 이야기가 시장에 퍼지자, 삼성전자에서는 “계획이 없다”라는 공식 입장까지 나왔다.
현재 IB업계의 시선은 ADR보다 삼성그룹의 해외 인수합병(M&A)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에는 지난해 11월 사업지원실 산하 M&A팀이 별도 조직으로 마련됐고, 하만 인수 등에 관여했던 안중현 사장이 팀장을 맡고 있는 상태다.

금융·IT 계열사에서도 해외 거래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미국 프린시플파이낸셜그룹(PFG), 영국 특수보험사 캐노피우스 관련 거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S의 경우 지난 4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KKR로부터 1조 2,2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투자를 유치하면서 해외 성장 기회를 모색할 기반도 마련됐다.
글로벌 IB들이 주목하는 것도, 이 같은 크로스보더 M&A 가능성이다. 삼성 계열사가 관심을 가질 만한 해외 기업을 미리 추린 뒤 거래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ADR이라는 한 가지 거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 ADR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일부 외국계 IB가 국내 금융권을 통해 관련 분위기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발행 가능성을 점검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형 자본시장 거래가 등장할 가능성 자체는 계속 살피는 상황이다.
결국 SK하이닉스 ADR이 보여준 막대한 거래 규모와 수수료가 글로벌 IB들을 삼성그룹 주변으로 끌어들였지만, 삼성전자의 선택은 아직 ADR과 거리가 있다. 대신 그룹 곳곳에서 해외 투자와 M&A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IB들의 경쟁 무대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삼성그룹을 둘러싼 관심의 중심이 ADR 발행 여부에서 다음 초대형 거래를 누가 선점하느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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