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동원산업 창립
1982년, 살코기 참치캔 출시
2003년 매출 2,000억 원 돌파

원양어선 한 척으로 시작해 업계 1위에 이름 올린 기업이 있다. 바로 국내 첫 참치캔을 출시한 동원그룹이다. 이 그룹의 시작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재철 명예회장은 자본금 1,000만 원과 원양어선 한 척으로 동원그룹을 설립하고 수산업에 뛰어든다. 원양에서 참치를 잡아 해외에 수출하면서 사업 기반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동원그룹 창업 후 불과 4년 만에 김 명예회장은 뜻밖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이 발생하면서다. 당시 배럴당 2달러 수준이던 유가는 1974년 11달러, 1975년엔 12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유가 상승은 연료 의존도가 큰 원양어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전체 어업 비용 중 유류비가 35%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불어 선진국들이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면서 조업 범위까지 제한돼 사업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도 김 명예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위기 대응 능력을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갔다. 김 명예회장은 기존의 해외 시장 위주 판매 전략을 접고 가까운 일본 시장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은 어류 단가가 높아 현지에 직접 판매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거리가 문제였다. 일반 원양어선으로 먼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냉동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먼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신선한 상태로 멀리 옮기기 어려워 인근 현지 판매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김 명예회장은 영하 50도 이하의 급속 냉동 어선을 도입해 유통 한계를 극복하고 사업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이후 1980년대 초 김 명예회장은 참치 통조림 산업에 뛰어들며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세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200~1,300달러를 넘나들던 1980년대 초 당시 참치캔은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식품이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수산물 통조림은 대부분 꽁치에 한정돼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참치캔을 생소하게 여겼지만, 김 명예회장은 달랐다. 국민소득 2,000달러를 넘기면 사람들도 더 나은 먹거리를 찾게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참치캔 시장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1982년 국내에서 최초로 참치 통조림을 출시한다. 이때 선보인 참치 통조림이 바로 ‘동원참치’다. 향후 이 제품은 동원그룹을 대표하는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으며 동원그룹의 성장을 견인했다.
동원참치 출시 후 그룹 내 모든 임직원은 돌아다니며 동원참치를 진열하고 판매 사원으로 일하는 등 참치캔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당시 동원산업은 참치캔을 고급 제품으로 내세워 한 캔에 1,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하며 중상류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동원참치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급성장하며 국민 식탁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를 발판 삼아 동원그룹은 살코기 참치 외에 야채참치, 고추참치 등 여러 제품을 출시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동원그룹은 수산에서 식품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당시 동원그룹은 참치의 영양학적 가치를 적극 알리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덕분에 참치캔은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2003년에는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하며 식품업계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2008년 동원그룹은 미국 최대 참치캔 브랜드 ‘스타키스트(Starkist)’를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한층 높였다.
매출 2,000억 원 돌파 이후 8년 만에 3,000억 원을 넘어서며 동원그룹은 국민 식품기업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후 동원그룹은 고객 입맛에 맞춘 참치 제품을 선보이며 올해 재계 순위 57위에 올랐다. 다만, 지난해 55위를 기록했던 것 대비 소폭 하락한 수치이며 이는 자산 총액이 9조 3,830억 원에서 8조 8,940억 원으로 5.2%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한편, 원양어선 한 척으로 참치 신화를 일궈낸 김 명예회장이 지난 2019년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는 1969년 동원그룹을 창업한 지 50년 만이다. 당시 김 명예회장은 경기 이천시의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제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직에서 물러서서 여러분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하고자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동원그룹의 경영은 김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전 부회장(현 회장)이 맡게 되었다.
동원그룹은 원양어선 한 척에서 시작해 참치캔 시장을 선도하는 국민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의 혁신과 도전 정신, 그리고 꾸준한 변화와 적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영을 이어받은 김남정 전 부회장이 앞으로 동원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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