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500원 지폐 들고 차관 방문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1983년, 건조량 기준 조선 부문 세계 1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성공 신화를 쓴 남성이 있다. 그는 바로 현대그룹의 창업주 아산 정주영 회장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조선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수출 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1970년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업은 콧방귀를 뀔 정도로 불가능한 사업에 속했다. 앞서 1968년 현대그룹이 조선 사업을 하겠다고 밝히자, 정부 관료들은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사람들의 비판에도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만들겠다는 꿈을 결코 놓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부터 현실의 벽은 높았다. 배를 만들어본 경험도, 배를 만들 조선소조차 없는 회사에 선뜻 돈을 빌려줄 은행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 창업주는 조선소를 짓겠다는 다짐 하나로 백사장 사진, 유조선 도면을 가지고 유럽으로 향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첫걸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간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이 대출을 거절한 것이다. 이에 정주영 창업주는 은행 대출을 끌어낼 수 있는 회장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그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롱바텀 회장을 설득하는 길도 쉽지 않았다. 정 창업주가 이야기를 꺼내자 롱바텀 회장 역시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정 창업주는 자신이 챙겨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오.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오”라고 설득했다.
정 창업주는 끈질긴 설득 끝에 4,300만 달러(한화 약 510억 원)의 차관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국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ECGD는 선박 구매자가 있다는 확실한 증빙을 제출해야만 승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창업주는 직접 선주를 찾아 나섰고, 끝내 그리스의 ‘선 엔터프라이즈’ 리바노스 회장이 값싼 유조선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하며 ECGD의 보증 승인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1972년 울산 백사장에 현대 울산 조선소가 설립됐다. 정 창업주의 조선소 설립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배를 건조한 경험도, 조선소도 없는 그에게 세계 최대 선주인 리바노스가 선박 발주를 맡긴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같은 해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기공식에 참석한 정 창업주는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工期) 내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라고 밝혔다. 그의 다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1974년 HD현대중공업 준공식이 개최되었으며 대한민국 1호 선박 ‘애틀란틱 배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준공식은 TV 생중계로 전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이 순간은 국내외의 걱정을 일거에 불식시키며 세계 무대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됐다. HD현대중공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어갔다. 이들은 기공식 이후 11년이 지난 1983년 조선 부문 세계 최대 건조량을 기록하며 업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정주영 창업주의 끈질긴 도전은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오늘날 세계 조선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굳건히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HD현대중공업 조선업이 보여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지난해 말부터 선가가 다소 하락하고 발주량이 줄어들었으나 HD현대중공업은 견고한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앞으로도 안정적인 재무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 HD현대중공업의 분기 보고에서 따르면 올해 1분기 현금성 자산은 2조 7,368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지난해 말 1조 2,579억 원 대비 117.6% 상승한 수치다. 실적도 급등한 수치를 보였다. HD현대중공업은 1분기에 환율 상승과 고선가 선박 매출이 조기에 반영되며 매출 3조 8,225억 원과 영업이익 4,337억 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9%, 영업이익은 무려 1,936.2% 증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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