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투자 멈추자, 집값 반 토막
공급 과잉에 미분양 4천 가구 돌파
반도체 위기, 지역 경제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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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부르던 아파트가 이제 5억?” 2021년 평택의 고덕국제신도시 아파트 시장은 활황이었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연장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9억~10억 원을 호가하던 아파트가 속출했다. 2023년 고덕동 거리 곳곳에는 젊은 인구가 넘쳐났고 상가에도 활기가 돌았다. 특히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앞은 대학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생동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평택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평택 부동산 시장이 급락한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투자 속도 조절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으로, 2015년 착공 이후 6개 공장을 단계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생산도 담당하는 핵심 기지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연이어 적자를 내면서 투자 계획을 늦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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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2023년 약 2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4년에는 4조 원 적자가 예상된다. 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해 5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율(생산성) 문제와 주요 고객사 확보 실패가 겹치면서 공정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평택캠퍼스 5공장(P5) 건설이 중단됐고, 4공장(P4)도 일부 공사만 진행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경기 부진은 곧바로 지역 경제에 충격을 줬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와 건설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상권이 무너졌다. 한때 활기가 넘쳤던 고덕동 메인 상가에는 빈 점포가 속출하고,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음식점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심지어 고덕 프리미엄 아울렛마저 부도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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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삼성전자 효과를 믿고 매입했던 투자자들은 급매를 던지기 시작했다. 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고덕국제신도시 파라곤(전용 84㎡)은 2021년 9억 8,000만 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1월 5억 8,000만 원에 팔리며 약 4억 원이 하락했다. GTX-A·C 노선 연장 호재로 주목받았던 평택 지제역 인근의 지제역 더샵센트럴시티(전용 84㎡) 역시 9억 원에서 7억 7,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평택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 과잉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평택은 반도체 산업 성장과 수도권 접근성 향상 기대감으로 지난 10년간 8만 5,712가구가 입주했다. 그러나 연간 적정 공급량은 3,000가구 수준으로 평가된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도 2만 2,88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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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당분간 평택 집값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대만 TSMC와의 2나노 반도체 수주 경쟁에서 밀리고 있으며, 엔비디아·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택공장의 추가 투자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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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분위기는 삼성전자의 상황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삼성전자의 실적과 의사결정에 따라 공사 일정과 투자 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반등하고, 다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만 지역 경제도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3나노 공정 수율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갤럭시Z폴드·플립7 시리즈에 탑재할 엑시노스 칩을 생산해 적자 폭을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상황이 급격히 개선되기는 어렵다. 평택의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투자 확대, 반도체 시장 반등, 미분양 해소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반도체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평택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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