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그룹 건설 명가
서울신라호텔·워커힐 수주
2세 경영 이후 부채 증가
한때 신라호텔, 워커힐호텔 등 국내 대형 호텔들을 공사하며 이름을 알린 ‘건설 명가’는 잘못된 2세 경영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이는 국내 건설업체 가운데 중동시장에 최초로 진출한 삼환기업이다. 66년 역사의 막을 내린 삼환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삼환그룹은 당초 건설업의 1세대로 불리며 외환위기에 좌초되는 여러 건설 기업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생존해 온 기업이다. 이는 삼환그룹이 최종환 삼환그룹 창업주의 경영 방식으로 꾸준하게 내실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당시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 나갔던 여타 기업과 달리 건설업에만 집중하며 내실을 다져온 삼환기업은 경영 2세대의 비리와 남매의 난으로 무너졌다.
삼환그룹은 1946년 최종환 창업주의 손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글재주가 뛰어나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던 최종환 창업주는 아버지를 여의고 가세가 기울며 일찍이 일을 시작했다. 18세의 나이로 두 형과 일을 시작한 그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두 형과 함께 삼 형제의 이름 끝 자인 ‘환’을 딴 삼환기업 공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실질적인 경영자는 최종환 창업주로, 주한미군이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발주하지 않고 한 업체에 통째로 맡겨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환기업은 주한미군의 공사를 독점 수준으로 맡으며 2년 만에 서울 을지로에 사옥을 세웠다. 특히 6·25전쟁을 겪은 후에는 전후 복구 사업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으며, 1952년 9월 주식회사로 전환하기도 했다.
재계에 따르면 삼환그룹의 설립에 참여했던 삼형제 중 최종환 창업주가 1만 주, 둘째 형 최영환 씨가 5,000주, 첫째 형 최명환 씨가 500주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1962년 삼환그룹은 공개입찰에서 유명한 건설사들을 제치고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 공사를 수주하며 재계에 이름을 알렸다.
워커힐 호텔 공사 수주 이후 신라호텔, 조선호텔, 삼일빌딩 등 유명한 빌딩과 대형 호텔을 도맡아 건축하며 ‘건설 명가’로 명성을 크게 얻기도 했다. 이 시기 삼환은 국내 시공 능력 4위를 기록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최종환 창업주는 해외 진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난 1963년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 진출을 시도한 삼환은 4개월 만에 철수를 경험하고 사업을 재정비해 지난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해 해외 건설 사업에 포문을 연 것으로 전해졌다.
5년 뒤인 19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여러 번 실패를 겪은 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다만, 완공 때까지 자재 공급난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환그룹은 적자 기록에 좌절하지 않았다.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제다시 미화 공사’를 메카 순례 기간 전까지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따낸 삼환은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진행하며 당시 파이살 국왕의 눈에 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삼환그룹은 6,0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삼환그룹은 1980년대에 예멘, 요르단, 미국 알래스카 등 세계 각국에 시장을 개척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 시기 계열사를 9개로 늘린 삼환그룹은 계열사의 경영을 친·인척들에게 맡기고 건설업에 집중했다. 최종환 창업주의 경영 방식 덕분에 삼환그룹은 IMF 시기 위상이 흔들리던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굳건한 입지로 탄탄한 경영을 펼칠 수 있었다.
다만, 이때 최종환 창업주가 회사 창립 50주년에 아들 최용권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삼환의 몰락 역시 시작됐다. 이는 최용권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직후부터 삼환이 몰락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최용권 회장이 이끄는 삼환은 아파트 사업에 진출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외환위기 직후 불법 정리해고 논란 및 비자금 문제를 겪어야 했다. 여기에 지난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 1조 1,373억 원이던 매출은 2011년 8,600억 원대로 급감했고 영업손실과 부채는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난 2012년 삼환그룹은 약 7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다만, 삼환그룹이 서울 소공동 부지를 부영주택에 1,721억 원 매각을 체결하고, 최용권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지분 12%를 내놓고 사재출연을 약속하며 1년 뒤 법정관리 종결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그룹 부도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최용권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 직원의 폭로가 나왔고, 노조가 이를 검찰에 고발해 회장이 기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에 최용권 회장은 계열사인 신민상호저축은행을 통해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거액의 사업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183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한, 여동생이 최용권 회장을 고소하며 악재가 겹쳤고, 이에 약속됐던 사재 출연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용권 회장을 둘러싼 악재가 겹치자 삼환그룹은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지난 2016년 10월 소액주주들의 주도로 다시 한번 법정관리에 돌입한 삼환은 2년여의 세월이 흐른 2018년 5월 SM그룹에 630억 원에 매각돼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970년대 건설 명가로 불리던 삼환그룹은 오너 2세의 잘못된 경영과 사법리스크로 창립 약 72년 만에 몰락하게 됐다.
댓글1
능력없으면 자식이라도 경영권 넘기면 안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식이라도 회사 경영을 넘기지 말고, 전문 경영인을 두고 사업을 진행 했어야 한다는 말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