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침묵행진을 제안했던 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집회 과정에서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후 두 차례 국회에 입성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최근 이재명 정부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됐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용혜인 의원은 겨익도 부천에서 태어나 안산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당시 그는 노동당에 소속된 대학생이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용 후보자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행동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해 4월 29일 용 후보자는 청와대 게시판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당시 그는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라고 밝히며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침묵 추모 시위를 최초로 제안했다.
이에 따라 그는 5월 3일 서울 종로구 일인미술관 앞에서 ‘가만히 있으라’ 피켓을 들고 세월호 대처를 규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침묵 행진을 하며 집시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어 같은달 18일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 행진 시위를 하며 신고범위를 일탈한 혐의, 같은 해 6월10일 국무총리 공관 60m 내에서 세월호 추모 시위하며 해산명령에 불응한 혐의도 함께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2014년 6월 28일 세월호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한 ‘2차시국대회 행진’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용 후보자는 참가자 약 3,000명과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시위를 벌여 교통을 방해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게 됐다.

재판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1심은 일인미술관 앞 침묵 행진과 관련한 집시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봤지만, 나머지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고, 2심은 판단을 달리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국무총리 공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 판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법원은 해당 결정의 효력을 반영해 2014년 6월 10일 국무총리 공관 인근 시위와 관련한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보고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용 후보자는 기본소득정치연대 대표 등을 거쳐 기본소득당 창당을 주도하며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또한 지난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용혜인 후보자는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성평등 관련 의제를 다루며 한차례 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그는 임신 중지 의약품 ‘미프진’의 국내 허가와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혈연이나 혼인으로 연결되지 않은 성인도 가족관계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주도했다.

12년 전 대학생의 신분으로 집회를 추진해 주목받았던 용혜인의 근황은 어떨까? 지난 30일 용 후보자는 정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그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용 후보자는 SNS를 통해 “주말 아침 여섯 살 아이를 돌보는 중에 지명 소식을 전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용혜인 후보자는 “30대 워킹맘으로서, 국정을 함께 책임지는 야당의 일원으로서 어느 때보다 막중한 소임 의식과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체감하는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고 더욱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용 후보자는 “모두의 성평등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이 처한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내기 위한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용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 임명될 경우 첫 ‘90년대생 장관’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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