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까지 번진 통매각
하이엔드 미분양 속출
CR리츠 효과는 제한적

경기 침체 우려와 분양가 급등, 소비 심리 위축이 맞물리며 부동산 시장에 ‘통매각’이라는 극단적 유동화 전략이 확산하고 있다. 과거 지방 부동산 시장에서 주로 나타나던 현상이 최근에는 서울 강남권의 하이엔드 주택 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오데뜨오드 도곡’이다. 지하 6층~지상 20층, 총 84가구 규모의 소형 럭셔리 주거 상품으로 기획됐지만, 높은 분양가와 도시형생활주택 수요의 한계에 부딪히며 흥행에 실패했다.

2020년 분양을 시작했지만 준공 이후에도 상당수 가구가 미분양 상태로 남았고, 결국 전 가구(84가구)와 부대시설(24실)이 공매로 전환됐다. 해당 자산은 지난해 9월 첫 공매가 진행됐으나 매수자를 찾지 못해 유찰됐다. 이후 9차례에 걸친 공매 시도에도 낙찰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최저입찰가는 1,830억 원에서 1,073억 원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수의계약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청담동과 종로, 마곡 등 서울 주요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청담동의 ‘포도 바이 펜디 까사’ 개발 용지는 초고가 분양가로 주목을 받았지만 미분양과 자금난으로 공매에 나왔으며, 종로구 효제동 고급 오피스텔 및 근린생활시설 개발 프로젝트 ‘효제아트PFV’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강서구 마곡지구에 위치한 ‘더트루엘마곡HQ’는 초역세권 입지를 갖췄음에도 수요자의 관심을 받지 못해 아파트 142가구와 상가 시설이 전부 시장에 매물로 등장했다. 지난해 8월 청약 신청을 받았으나, 이후 지속된 미분양으로 결국 공매 절차가 진행됐다.
기존에는 통매각이 지방의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 지역에서 자금 회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최근엔 서울 핵심지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주택시장 침체의 심각성을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수백억 원대 미분양 통매물을 소화할 매수 주체가 없기 때문에 통매각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면서도, “지방 미분양이 더 심화하면 헐값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방 미분양 CR리츠(기업 구조조정용 부동산투자회사)를 부활시켰다. 최근 JB자산운용이 설립한 ‘제이비 와이에스케이 제2호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는 그 첫 사례다. 이 리츠는 대구 수성구의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 아파트 288가구를 일괄 매입해 임대 후 매각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CR리츠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한 후 일정 기간 임대해서 수익을 내다가 이후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매각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과거에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2,200가구, 500가구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한 바 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지방 미분양 주택 취득 시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법인 취득세 중과세율(12%) 대신 기본세율(1~3%)이 적용되며, 취득 후 5년간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혜택도 주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CR리츠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리츠 운용사들은 투자 수익이 우선이기 때문에, 소형 평형이나 역세권 위주로만 매입할 가능성이 높고, 외곽지역이나 대형 평형 단지는 여전히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이 ‘5년 내 엑시트’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 회복이 늦어지거나 매각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리츠 자체의 수익성이 악화할 위험이 크다”며, “CR리츠는 수익 창출이 목적이므로 가망 없는 미분양 매물까지 포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다음 달에는 대구와 전남 광양 등에서 미분양 아파트 1,500가구를 매입하는 CR리츠가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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