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사범 첫 긴급체포
기술 유출 범죄 1,238억 환수
국가 핵심기술 유출 범죄 증가

국내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핵심 기술을 유출하려 한 혐의로 첫 긴급 체포가 이뤄지면서 산업 안보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첨단 기술이 중국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기술 탈취 시도는 점차 교묘하고 치밀해지고 있으며 단순한 내부 문서 유출 단계를 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범죄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 수법이 고도화돼 내부 정보 빼내기가 아니라 기술 설계 전체를 탈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라며 “정부 차원의 전방위적 대응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긴급 체포된 직원 사례 역시 기술 유출 범죄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가 많다. 회사 내 보안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협력업체를 가장해 기술 문서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자본이 국내에 위장 법인을 설립하고 자문회사 혹은 특허 관리 전문기업을 내세워 기술을 빼내는 사례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한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직원이 중국 연계 법인을 세워 기술을 몰래 반출하려다 적발돼 법적 처벌을 받았다. 또 다른 사례로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술자를 높은 연봉으로 영입한 뒤 이들이 보유한 설계도면 전체를 불법 유출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같은 기술 유출은 우리 경제 성장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에서 빠른 기술 격차 해소를 목표로, 적극적으로 기술 탈취에 나서고 있어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검찰은 2022년 9월 기술 유출 범죄 수사 지원센터를 신설한 뒤 수사 및 기소 성과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간 226명을 입건하고 73명을 구속기소 했으며 범죄 수익 환수액만 1,238억 원에 달한다. 구속률과 기소율 모두 상승 추세를 보이며 실형 선고 비율도 늘어났다. 반면 무죄 판결 비율은 낮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법적 대응 체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기술 유출 범죄는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고부가 첨단기술 산업 전반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총 396건의 사건 중 약 3분의 1은 첨단기술 관련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기간 피해 규모를 약 23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기술 유출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피해 기업 직원을 직접 고용해 정보를 빼내는 형태에서 벗어나, 위장 회사나 법률 자문 명목으로 기술을 취득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심한 경우 이들은 “기존 연봉의 3배를 줄 테니 기술과 함께 우리 회사로 이직해라”라는 등의 권유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중앙지검은 중국 내 위장법인과 고용계약을 맺고 가명을 사용하는 등 교묘한 수법으로 반도체 증착장비 자료를 유출한 혐의자 6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지검, 동부지검, 수원지검, 대전지검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변리사 자격과 이공계 출신 검사들을 배치해 수사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피해 규모를 양형 기준에 반영하는 등 법적 처벌 기준도 개선했다.
국제 공조도 활발하다. 검찰은 2023년 4월 미국 FBI, 산업안보국, 국토안보수사국 등과 함께 ‘기술 유출 한·미 라운드테이블’을 구성해 기술 보호 협력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3차 회의에는 일본 경찰청도 참여해 다자간 협력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 피해 기업의 신고가 저조한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어 기술 유출 피해 규모 산정이 어렵고 법원에서 피해 입증이 힘들어 양형 반영이 미흡한 점도 문제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기술 유출 범죄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편, 산업계 역시 기술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임직원에게 비밀 유지 서약을 받고, 퇴직자들에겐 취업 제한 서약서를 받는 등 내부 보안 강화를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퇴직자에 대한 보안 점검과 경쟁사 이직 제한 제도를 운영하며 자체 보안 플랫폼 ‘녹스’를 통해 다중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외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내부 보안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기술 유출에 맞서고 있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