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美 간호사 응시 3배
국내 의료 현장, 업무 부담 ‘심각’
진료 지원 간호사(PA) 위험

해외 취업을 위해 시험에 응시하는 한국인 간호사 수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A 씨는 최근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NCLEX)에 최종 합격했다. 일본에서 두 차례 시험을 치른 그는 “일은 줄지 않고, 인력 충원도 없으니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에 따르면 2019년 834명이던 한국인 응시자는 2023년 3,299명으로 약 4배 늘었다. 여기에 더해 일부 국내 병원은 미국 현지 병원과 직접 계약을 맺는 등, 간호사 유출 흐름은 점차 구조화되는 양상이다.

이들을 붙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국내 병원 환경이다. 최근에는 신규 채용 규모마저 줄어들며 인력 공백이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24년 1분기 상급종합병원 44곳에서 채용한 간호사는 총 2,901명으로, 2023년 같은 기간(13,211명)과 비교할 때 22%에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신규 간호사로 채용된 뒤 수개월째 발령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웨이팅게일’들 사이에서도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확산 중이다.

이러한 공백이 고스란히 현장 간호사들의 부담으로 이어진 가운데, 의정 갈등 이후 업무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간호사 29,2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7%가 “업무량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자신의 직무 외 업무까지 떠안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는 63.3%로 조사됐다.
임금 구조도 이들의 이탈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 이후 간호조무사 고용이 확대된 반면 간호사 고용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숙련 간호사와 저숙련 인력 간 임금 격차가 줄어들면서, 경력 있는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제도 차원의 개선 요구도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반영은 어려워 보인다.

진료 지원 간호사(PA) 제도 확대도 부담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된다. 수술 동의서 작성, 의무기록 정리, 처방 대행 등 본래 의사의 책임 영역까지 간호사에게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업무 범위가 부재한 상황에서 책임만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오는 6월 시행 예정인 개정 간호법은 진료 지원 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 쟁점인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정이 빠져 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시행령에도 구체적 기준은 담기지 않았다. 이에 현장에서는 “혼란을 키우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의료인의 업무 환경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과도 연관이 크다는 점에서 불안은 더욱 확산한다. 같은 조사에서 72.3%의 간호사가 “내일 출근이 싫다”고 답했으며, 59.7%는 “자주 사직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3개월 내 구체적으로 사직을 고려한 비율도 70.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일부 지역 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30명 가까운 환자를 동시에 돌보는 경우도 있다는 제보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현장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공공노련은 병원 노동자의 49%가 인력 부족으로 인해 고강도 노동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향후 국내 간호인력 부족에 대한 전망 또한 밝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까지 56,000명의 간호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예측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간호사들의 이탈이 단순한 이직이나 개인 선택으로만 보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인력 축소, 책임 전가, 임금 체계 등 현장의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숙련된 인력의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실력 있는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는 상황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풀이된다. 특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그 영향이 환자에 대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경고등이 켜진 모양새다.
실제로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오랜 기간 개선되지 못한 채 누적돼 왔다. 이에 구조적인 병원 실태를 면밀히 반영해 점검하고, 의료계의 누수를 막을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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