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익 7.4조, 2분기 연속 삼성 제쳐
AI 열풍에 HBM 매출 2배 전망
관세 리스크엔 “영향 정량화 어려워”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 호조에 힘입어 1분기 영업이익 7조 4,40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삼성전자를 2분기 연속 제치고 국내 영업이익 1위에 오른 성과로, 시장 컨센서스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수기라는 업황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이다.
회사가 공시한 2024년 1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17조 6,39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57.8%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42%로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 업황 자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실적을 낸 배경에는 AI 확산과 맞물린 ‘고부가가치 메모리’의 수요 확대, 그리고 SK하이닉스의 기술 경쟁력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단일 구조인 하이닉스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앞질렀다는 점에서, 이번 실적은 단순 숫자를 넘어선 의미라고 전해진다.
삼성전자의 경우 갤럭시 스마트폰 등 비메모리 부문에서 일정 수준 방어 효과를 봤지만,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단일 집중 전략으로 이를 뛰어넘었다는 분석이다.

핵심은 고성능 메모리, 특히 HBM과 DDR5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기준 D램 시장점유율 36%로 1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에 주력하며 수익 구조를 고도화해 왔다. 올해 1분기 DDR5 96GB D램 모듈의 수요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HBM 포함 전체 D램 매출 비중이 전 분기 74%에서 이번 분기 80%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HBM은 AI 반도체 수요의 핵심이다.
하이닉스는 5세대 HBM 제품을 엔비디아에 전량 공급 중이다. 제품 특성 상 1년 전 수요 협의가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졌다. 이는 공급 안정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관세나 지정학적 변수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고객들과 협의 중이던 메모리 수요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실적은 ‘딥시크 쇼크’로 대표되는 중국발 AI 파장과도 연관이 크다.
딥시크와 같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이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AI 모델 개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고성능 D램 및 HBM 수요로 이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의 저변 확대가 하이닉스에 실질적 수요 증가로 직결된 것이다.
반면, 우려 요인도 있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는 여전히 변수다.
현재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를 한국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일부 물량이 미국으로 수출된다.
지금까지는 베트남이나 한국에서 후공정을 거쳐 관세 회피 구조를 만들어왔지만, 만약 미국이 기준을 ‘최종 가공지’에서 다른 방식으로 변경할 경우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회사 측은 이와 관련해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비중은 높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관세의 정량적 영향 산출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세 회피 수단이나 전략적 재배치 여지가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실적 흐름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업계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전체 HBM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전체 영업이익은 34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 중 상당 부분이 AI 서버 수요와 HBM 계약 기반 물량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메모리 수요의 경기 민감도에서 한 발 벗어난 실적 구조가 갖춰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에서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앞으로도 비수기 진입 여부와 관계없이 차별화된 실적을 이어가기 위한 체질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메모리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하이닉스는 기술력과 안정적 공급 계약, 그리고 고부가 중심 전략이라는 세 가지 카드를 확보하며 중심에 섰다.
이번 분기 실적은 그 카드들이 유효하게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시험대였고, 시장의 결과는 합격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세 리스크와 경쟁사 반격, 업황 변동성이라는 변수 속에서 이러한 ‘깜짝 질주’가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 여전히 지켜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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