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확인서 필수
토허구역 거래 난항
전세 매물도 급감

서울 강남권 부동산 시장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매매 거래가 속속 무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일대에서는 세입자의 이사 여부를 명시한 ‘이사 확인서’가 거래 성사의 필수 조건으로 떠올랐다.
27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구 일대에서는 세입자가 확실히 이사 간다는 확인서 없이는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가 며칠에 이사 나가는지를 문서로 확인받고 나서야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구청에 허가 신청을 한다”며 “최근에 거래를 몇 건 진행했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부분까지 이제는 일일이 확인하고 관리해야 해 일이 훨씬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주택을 구매한 사람이 4개월 안에 실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그 때문에 전세 세입자가 있는 집은 사실상 거래가 어렵다. 이 때문에 세입자가 단순히 말로 이사를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매수자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크고 거래 파기 가능성도 존재해 ‘이사 확인서’라는 새로운 문서가 자연스럽게 요구되고 있다.
또 다른 토허구역인 송파구 잠실동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아파트 매물이 시장에 나왔다가 며칠 만에 다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일부는 세입자가 이사를 거부하면서 매물이 철회됐다.
잠실의 한 중개업자는 “집주인이 웃돈까지 제시하며 나가달라고 협의를 시도하지만 세입자가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며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하고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많아 중개인이 이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한 차례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고 최대 4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집을 팔 계획이었던 집주인들은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중개업자는 “전세 세입자가 있는 물건이 갑작스럽게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받게 되면서 집주인 입장에서는 최소 4년을 기다려야 매매가 가능한 셈”이라며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매물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확대 지정된 첫날인 3월 24일 기준 강남3구와 용산구의 아파트 매물은 총 2,012건이었으나 한 달 후인 4월 24일에는 1,402건으로 줄었고 현재는 1,073건으로 감소했다. 약 두 달 만에 46%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 같은 갈등과 거래 축소는 강남권 외에도 다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용산구의 한 중개업자는 “토지거래허가제와 임대차보호법이 동시에 적용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유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졌다”며 “임대차계약이 만기 되는 물건이 일부 나오는 것 외에는 매물이 다시 늘어나기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 확인서라는 문서까지 등장한 건 그만큼 시장에 불신이 깊어졌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편, 수도권 전세 매물도 씨가 마르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시행과 전세자금 대출 규제 때문이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 매물은 6만 380건으로 1년 전(7만 6,632건)보다 21.2%(1만 6,252건) 줄었다. 경기도에서 1년 새 전체 전세 물량의 31.7%(1만 2,180건)가 사라졌고, 서울은 8.7% 감소했다.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세 매물은 1년 전보다 40.5% 급감한 344건으로 집계됐다.

전세 대출이 축소되자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거나 실거주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한 집에서 4년까지 살 수 있는 것도 시장에 나오는 신규 전세가 줄어든 요인으로 꼽힌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수도권 입주 물량 감소가 전세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전셋값이 상승하는 추세여서 계약갱신권을 사용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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