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 자동차 사업
동아자동차 인수 쌍용자동차
무리한 확장·과도한 부채로 몰락
과거 삼성에 견줄 정도로 높은 위상을 자랑했던 한 대기업은 재계 6위 그룹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부흥했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없던 이 기업은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이는 자동차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갑작스러운 정계 진출 등 여러 사건이 연쇄적으로 엮이며 한때 삼성에 견줄 정도의 기업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는 한때 코란도·무쏘·체어맨·렉스턴 등을 속속 출시하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승용차 명가로 이름을 날렸던 쌍용그룹이다.
쌍용그룹은 창업주인 김성곤 전 회장의 손에서 시작됐다. 해방 이후 고려화재해상보험(흥국화재), 금성방직을 설립했고 동양통신을 창간하며 언론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던 김성곤 회장은 1962년 쌍용그룹의 전신인 쌍용양회를 설립한다.
레미콘 사업에 뛰어든 그는 1960년대 들어 건설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그룹이 급성장함에 따라, 다른 회사들에도 쌍용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쌍용그룹을 일궈냈다. 이에 쌍용은 1969년 종합조정실을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그룹의 형태를 갖췄다.
창업주인 김성곤 회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1965년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을 맡아 재벌의 정치자금 모금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김성곤 회장은 정계, 재계, 언론계를 아울러서 1971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룹도 이 시기 급성장의 가도를 달리며 재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시기 김성곤 회장은 공무원 겸직금지 제도가 없어 회장직 사퇴 없이 회장직과 겸임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성곤 회장이 1975년 사망한 후 장남 김석원이 쌍용그룹을 이어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석원 회장은 당초 쌍용그룹의 중흥기와 몰락을 함께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김석원 회장이 레미콘 위주의 회사였던 쌍용그룹을 중공업과 건설, 석유, 자동차를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에 쌍용그룹은 한때 재계 서열 6위까지 오르며 성장 가도를 달렸지만, 쌍용차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갑작스러운 정계 진출, 외환위기(IMF) 등이 겹치며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석원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쌍용중공업을 세우고 이듬해 쌍용 종합건설을 세운 뒤 1976년 이란 국영석유공사와 합작해 ‘한이 석유'(현 에쓰-오일)를 세웠다.
이어 1983년 효성그룹으로부터 효성 증권(현 신한 투자 증권)을 인수하고 1986년에 동아자동차까지 인수해 사세를 키워 나갔다. 여러 사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계열사로 쌍용(무역업-현 GS글로벌),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쌍용중공업(현 STX), 쌍용양회, 쌍용건설, 남광토건, 쌍용 화재(현 흥국화재),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쌍용투자 증권(현 신한 투자 증권) 등을 거느린 총매출 25조 원, 재계 순위 5~6위의 거대재벌에 속했다.
다만, 문어발식 경영과 자동차 사업의 부진으로 인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열혈 자동차 애호가였던 김석원 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화근이었다는 평가를 제기했다. 지난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김석원 회장은 이후 외국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면서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쌍용자동차의 적자가 나머지 계열사 전체 흑자의 몇 배를 뛰어넘는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회장의 과도한 관심에 따른 고급, 고가차 위주의 정책이 적자가 누적된 원인이라고 지적되기도 했다.
쌍용의 자동차 사업의 위기를 맞은 이 시기 김석원 회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결국 최고경영자의 정치 외도로 힘든 사이에 쌍용자동차의 경영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하며 쌍용그룹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김석원 회장은 쌍용그룹을 살리기 위해 결국 쌍용자동차를 포기하기로 하고, 당시 자동차산업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던 삼성과 자동차 업계 만년 3위였던 대우에 매각을 제안하였으나, 삼성은 빚이 너무 많다면서 거절했다. 여기에 대우는 쌍용의 위급한 상황을 감지하고 가격을 내려 인수하려고 했다. 다만, 같은 시기 IMF가 쌍용그룹을 덮치며 재계 6위 굴지의 대기업은 몰락했다.
한편, 쌍용그룹의 2대 회장인 김석원 전 회장은 타고난 사업 감각으로 그룹을 빠르게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그가 1980년대 쌍용그룹의 재계 순위를 6위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자동차 사랑으로 인해 그룹의 몰락을 이끌었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한다.
당초 쌍용자동차에서 출시했던 코란도 훼미리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쌍용차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에 2조 원에 달하는 부채가 쌓인 쌍용차에 그룹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쌍용그룹은 결국 지난 2000년 해체됐으며, 김석원 전 회장은 지난해 쌍용그룹의 재기를 보지 못한 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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