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부인과 줄폐업
“분만 의료사고 부담 심해”
수가 인상·사법 리스크 제거
최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회장 김재유, 이하 의사회)가 사법 리스크 해소 및 수가 정상화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런 발언이 나온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지난 20일 의사회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추계 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산부인과가 붕괴 상황에 이르렀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재유 회장은 먼저 산부인과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의료진들의 사법 리스크를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유 회장은 “정부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면서 “의사가 진료 상황에서 타당한 결정을 했다면 이를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하며, 필수 불가결인 의료사고에 이런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의료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3,000개 이상의 수가를 인상하겠다고 했으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즉, 필수 의료 붕괴의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의료 과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재유 회장은 “지금 산부인과 분만 수가를 보면 10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올랐다”며 “산부인과 의사 수 또한 10년 전보다 늘었지만, 오히려 분만실을 운영하는 의사는 더 줄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산부인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많아졌고, 사법 리스크가 수가보다 더 큰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재유 회장은 “박민수 차관과 의료계가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사법 리스크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고, 복지부도 이를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사법 리스크 경감은 국민 정서를 바꿔야 하는 일로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필수 의료가 더 붕괴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여기에 정부가 수가를 원가 이상으로 과감하게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들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느끼는 부담감에 대해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유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의 분만실 사고 면책은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이다. 면책이 안 되면 분만 의사는 계속 줄어들 것”이라며 “안전한 의료환경을 위해 의사의 면책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다들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당분간, 앞으로도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안 할 것 같고, 인프라는 더 안 좋아질 것 같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젊은 의사들 역시 분만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미선 직선제산과의사회 공보이사는 “산부인과 팰로우, 조교수를 거쳐 분만병원에 취직했는데 대학에 있을 때는 어느 정도 보호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개원가에서 일하며 소송과 보호자 컴플레인을 직접 겪어보니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다”며 “나도 내 가정이 있는데 분만이 있는 날이면 아침마다 산모가 피를 많이 안 흘리고, 아기도 잘 울고 모두 행복하게 끝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이어 “분만을 그만둔 지 1년 정도 됐는데 잘했다고 생각한다. (분만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첫째를 받아준 산모가 둘째도 받아달라고 하면 고민이 되지만 집에 있는 애들을 생각하면 안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의료계에 따르면 저출산이 심화하며 지방에서는 문을 닫는 대형 산부인과가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2020년 517개소에서 2022년 470개소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인 2012년(739개소)과 비교했을 때면 매년 분만 산부인과가 감소하고 있으며,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도 지난해 12월 기준 50곳에 달하는 것이다. 여기에 분만 전문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산부인과 폐업의 원인으로 꼽힌다.
의사회에 따르면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은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 중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같은 기간 171명에서 7명(6.7%)으로 감소했다.
이와 더불어 산부인과 전문의 중에서도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전문의가 분만을 포기하는 이유는 분만 사고에 대한 소송 진행 과정과 패소 시 배상 비용 등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고위험 임신이 늘면서 산부인과 의료분쟁도 증가하고 있지만 무과실 분만 사고에 대한 보상금은 최대 3,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분만사고 소송에서의 손해배상 금액은 10억 원대를 넘은 상황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소송이 진행되면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4년이 걸리고, 최종심까지 7~10년까지 소요돼 의료진의 정신적 부담도 크다는 점에서 분만을 포기하는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의사회에서는 산부인과 수가 전반에 대한 현실화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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