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2,000억 쾌척
만난 적 없는 ‘후원자’
진보 청년의 보수 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선거 캠프에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인물은 의외의 인물, 은둔 재벌 티모시 멜론이었다. 그는 트럼프 슈퍼팩(정치 후원단체)과 공화당에 1억 6,500만 달러(약 2,275억 원)를 기부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보다 많은 액수를 후원한 인물로 기록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멜론을 두고 “정치인의 얼굴도 모르고 기부를 하는 ‘묻지마 기부자’”라 표현했다.
티모시 멜론은 미국의 대표적인 재벌 가문인 멜론가 출신으로, 한때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사회사업가로 활동했다. 그는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린든 B. 존슨을 찍었으며, 1966년 예일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인종차별, 빈곤, 환경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사켐 펀드’라는 재단을 세워 다양한 소수자와 빈곤층을 지원했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법조인 단체에는 3년 동안 15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말하며 사회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됐고, “가난과의 전쟁은 비효율적”이라며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그는 자서전을 통해 진보 가치와 복지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가족 붕괴, 범죄, 마약 중독이 있는 한 가난과의 전쟁은 비효율적이라고 확신했다”며 “성공하기 힘든 인간이 가지는 몇 가지 근본적인 속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진보 성향의 청년은 시간이 흘러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후원자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24년, 그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을 가장 많이 후원한 개인 기부자가 됐다.

대개 세계적인 부호들은 정치 자금을 지원하며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5,0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빈곤 감소, 의료 개선,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가치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티모시 멜론은 이들과 달랐다. 그는 거액을 기부하고도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활동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도 개인적인 만남이 없었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20년과 2024년 대선 기간 그가 트럼프 측과 공화당에 낸 기부금은 알려진 금액만 2억2,700만 달러(약 3,132억 원)에 달한다. 2024년 대선에서만 1억6,5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이 중 1억2,500만 달러가 트럼프 캠프에 집중됐다. 2020년에도 그는 트럼프에게 5,000만 달러(약 689억 원)를 쾌척했다.
NYT는 “멜론은 트럼프에게 막대한 금액을 후원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그 목적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많은 이들이 ‘그는 무엇을 바라는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멜론은 언론의 접촉도 철저히 피하고 있다. NYT는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해 알려진 공식 기록은 2014년 자비로 출판한 자서전과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법정 자료뿐”이라고 전했다.

티모시 멜론 개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지만, 그가 속한 멜론 가문은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다. 은행업을 중심으로 부와 명성을 동시에 누렸던 멜론가는 오랜 시간 미국 재계와 정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티모시 멜론의 조부인 앤드류 멜론은 1920년대 미국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대공황 시기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리 의혹으로 결국 사임했지만, 무려 10년간 재무장관직을 유지한 인물이다.
멜론의 어린 시절 역시 남달랐다. 1942년생인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자란 집을 ‘구불구불한 벽돌 담장과 정돈된 정원을 갖춘 버지니아의 대저택’이라고 묘사했으며, 집에는 전용 운전기사는 물론 전용 비행기까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멜론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소 이질적인 성향을 보인 인물로 여겨진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도시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예일대생이었으며,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가장 멜론가답지 않은 인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켐 펀드’를 설립해 사회사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컴퓨터 소프트웨어 판매 사업, 1970년대에는 목재 사업에도 손을 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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