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승계 구도
인적·물적 분할 단행
한화의 지분 확보 관건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실적 바닥 역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기업이 회사의 안위에 신경 쓰지 않고 경영권 분쟁에만 집중하면서 주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할 주주총회가 경영권 분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해 비난받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한화의 경우 경영권 분쟁 없이 기업의 실적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며 주주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5년 만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화그룹의 경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한화그룹의 방산 부문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적 분할을 단행하며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회사인 한화 비전과 한화정밀기계 등 비방산 사업을 떼 신설 지주사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를 설립하고 방산·우주·항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인적 분할이 진행될 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신설 지주사의 분할 비율은 9대 1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관계자는 이번에 이루어진 인적 분할이 각 사업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김승연 회장 아들 삼 형제의 경영권 분쟁 불씨를 없애며 사업권 분할의 추가 조정 여지를 남겨둔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한화그룹은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는 ㈜한화 분할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는 ㈜한화 모멘텀 부문을 물적분할해 100% 비상장 자회사 한화모멘텀을 설립하는 동시에 자회사인 한화오션 및 한화솔루션에 일부 사업을 양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도하는 일부 사업은 구체적으로 ㈜한화 건설 부문의 해상풍력과 글로벌 부문의 플랜트를 한화오션에 넘기고 모멘텀 부문의 태양광 장비를 한화솔루션에 양도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는 물적 분할을 진행하고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적 분할을 각각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 시나리오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 분할과 물적분할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건 차후 경영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효율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다.
당초 한화그룹의 경우 경영권 승계를 ‘아름다운 이별’로 남기기 위해 세 아들이 맡게 될 역할을 일찌감치 분리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연 회장의 계획은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신재생에너지·석유화학 등 그룹 내 주요 사업을,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부문을,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건설·유통 부문을 맡아 경영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정해놓은 계획에 따라 한화그룹의 삼 형제는 각자 영위할 사업을 확보하고 계열 분리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효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모습과 매우 비슷하며 효성그룹 역시 ‘아름다운 이별’을 맞은 기업 중 하나로 익히 알려졌다. 사실상 ㈜한화의 경우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한화그룹의 주요 사업들이 ㈜한화를 필두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꼽히는 것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에서 ㈜한화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계열사들의 지분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실상 ㈜한화가 지주사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이 곧 본격적인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는 김승연 회장의 독자 경영체제에서 삼 형제로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부분의 경우 오너 3세의 경우 지분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하다는 점이 있다. 더불어 이들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만 상속 재산의 60%에 달해 지분 기반 지배력을 승계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 탓에 지주사 전환은 필수적인 요소로 보인다. 삼 형제가 지주사의 지분을 확보해야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 형제에게 가장 시급한 사안은 ㈜한화의 지분 확보로 보인다. 현재 김승연 회장이 ㈜한화의 지분 22.65%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배우자 故 서영민 여사가 보유하고 있던 ㈜한화 지분 1.42%를 삼 형제가 똑같이 나눠 상속받게 되면서 삼 형제가 보유한 지분 자체가 확대된 바 있다.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20여 년 전 차남과 삼남보다 먼저 ㈜한화 지분 매입을 시작해 4.91%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차남과 삼남이 4.28%의 ㈜한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이 이루어지는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이들의 지분에 별로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승계 과정에서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김승연 회장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본인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경험이 있어서인 것으로 추측된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이 유언 없이 별세하며 경영권 문제로 형제끼리 다툼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김승연 한화 회장은 동생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과 3년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극적으로 화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