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사생활과 유족 접근권 충돌
대형 참사마다 꾸준히 제기
디지털 유산 접근 법안 발의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고인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입법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실질적인 법안은 존재하지 않아 그간 망자의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법적 근거가 전무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살아있는 개인’에 대한 정보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행법에서는 유족의 요청만으로 고인의 휴대전화 계정 잠금을 해제할 수 없다. 이용자가 갑작스레 사망할 경우, 유족들은 고인의 휴대전화나 계정에 걸려있는 암호 등 보안을 해제할 수 없어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고인의 지인 연락처 등 최소한의 정보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대부분의 디지털 정보 처리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절차와 기준이 부재해 유족과 사업자 간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정해진 법령이 없다 보니 사업자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정보 처리가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자도 마찬가지로 유족의 재산 보호,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사업적 운영 부담 등 각종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지난달 7일 ‘고인의 디지털 정보 처리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발간한 국회입법조사처(조사처)에서는 법적으로 고인의 디지털 정보 보호 범위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으며, 정보 유형별로 처리 방안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용자가 자신의 디지털 정보 처리 방법을 사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기술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 같은 인식이 제고될 수 있게끔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유족들이 싸이월드 미니홈피 접근권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논의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 18대 국회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입법이 시도됐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제22대 국회에서는 관련 개정안이 1건 발의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상속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부터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제도를 마련하는 사례도 존재했다. 카카오톡은 2023년 1월 이미 디지털 유산과 관련한 제도를 마련했다. 카카오톡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장하되 유족의 추모에 차질이 없도록 시스템을 업데이트했다.
이른바 ‘추모 프로필’ 기능은 유족이 고인의 사후 프로필 권한을 가지게 되면 유고 소식이나 장례 소식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인이 지인들과 나눈 대화 메시지나 개인정보들은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프라이버시와 유족의 추모 권리를 모두 보장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지난 7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접근을 제도화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
법안에는 사전에 이용자가 자신의 디지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계정 대리인을 지정하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는 계정 대리인 접근 범위를 설정하고, 사망 혹은 실종 시 계정 대리인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이용자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최근 참사에서는 정부와 기업 간 협의 끝에 유가족에게 연락처가 제공됐으나 입법 공백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정부와 기업의 선의에만 기대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고인이나 실종자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유족의 접근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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