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버스 회사 KD운송그룹
2023년 매출 1조 966억
버스 독점화 문제도 제기돼

당시 월급으로 100원을 받고, 잠을 줄여 가며 남들보다 매일 4시간 일찍 출근하고 4시간 늦게 퇴근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1961년 갓 30세가 되었을 때 경기여객(지금의 경기고속) 임시직 사원으로 취직했다. 당시 아내에게 “이 회사의 주인이 될 테니 20년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입사한 지 18년 만인 1978년 8월 경기여객을 인수해 사장이 된다. 이는 목표보다 2년 앞당겨진 결과다.
이 성공 신화는 바로 허명회 KD운송그룹 창업주 이야기다.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을까? 그는 경기여객의 임시직 말단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자기 일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버스 및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조수에게 정비 등의 여러 가지 일들을 배워 성장해 나갔다.

그 결과 그를 눈여겨본 사장에 의해 입사 6개월 만에 주임으로 승진했고, 입사 1년이 되는 해에는 1962년에는 계장을 뛰어넘어 과장으로, 1969년에는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1971년 독립해 동업자인 권영우 박사와 함께 적자에 허덕이던 버스 업체에서 시세보다 싸게 30대의 버스를 구매해 대원여객을 설립했다. 허 창업주는 이 회사에서 버스를 운영하며 4달마다 추가로 버스를 구매해 사세를 조금씩 확장해 나갔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는 1978년 당시 인력 부족과 차량 노후, 임금 체불 등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경기여객을 인수하게 된다.

허 창업주는 대원여객과 경기여객을 필두로 권영우 회장의 금전적 지원 아래 실질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며 KD운송그룹을 일구어 냈다. KD운송그룹의 K는 경기고속을, D는 대원고속을 가리킨다.
현재 KD운송그룹은 2023년 기준 자산 총액 1조 2,503억 원, 매출 1조 966억 원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종합 버스 회사 그룹으로 성장했다. 버스 30대로 시작했던 KD 운송그룹은 고속버스, 시외버스, 공항버스, 광역버스, 시내버스, 마을버스를 모두 포함해 총 5,505대(2018년 기준)로 늘어났다.
이는 한국 여객용 버스의 약 10%가량으로, 전국 버스 열 대 중 한 대는 KD운송그룹의 버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일본에서 버스 보유 대수 1위(2,781대)를 기록한 서일본 철도 그룹의 2배이며, 미국의 유명 버스 회사인 그레이하운드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가 회사를 이렇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근면·성실함과 검소함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사에 근무했던 50년 동안 양친 부모상을 포함해 단 13일만 회사를 쉬었다. 특히 부모상을 제외한 3일은 녹내장 수술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로 확인됐다.
또한, 그는 효율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택했다. 버스와 관련된 계열사를 통해 정비, 폐차, 주유 등 버스 운영에서 필요한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연료(KD에너지텍), 정비(KD정비공장), 유니폼(KD어패럴), 먹을거리(KD푸드피아)를 들 수 있다.

허 창업주가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복지로도 유명했다. 임금 상승률을 노사에 백지위임하고 있어 이 같은 사례로 종종 언론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시행하고 않고 있지만, 2019년까지 무사고 운행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부부 동반 여행을 보내 주거나 금을 지급하는 등의 포상 제도도 존재했다.
다만, KD운송그룹의 경우 독과점으로 인한 차별 문제로 논란이 되기도 한다. 한 경기도 의원은 KD그룹의 변칙 M&A(기업간 인수·합병)로 피해본 도내 지자체는 상당수라고 밝혔다. 한 운수업체 관계자는 “KD그룹의 다른 운수업체 ‘밥그릇 뺏기’는 이미 이 바닥에서 유명하다”라며 “이는 주민들의 서비스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독점한 지역에 예외 없이 낙후된 버스를 배치하는 만행을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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