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 깨끗한나라 부진…무림은 상대적 선방
제지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가 원인
사업 다각화로 돌파구 찾아

스마트기기 보급·디지털 전환 영향으로 종이 사용량이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제지 판가(단가)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제지 수출 기업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특히 오너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선 주요 제지업체들 또한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업체별로 취급하는 품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3사 모두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점이다.
한솔제지는 현재 조동길 회장의 맏사위인 한경록 대표가, 무림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이무일 선대 회장의 장손이자 이동욱 무림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도균 대표가, 깨끗한나라는 최병민 회장의 맏딸인 최현수 대표가 오너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솔제지·깨끗한나라 등은 글로벌 실물 경기 침체와 디지털 전환 양상에 따른 인쇄·특수용지 수요 감소, 원자재·에너지 비용 증가 등 경영 환경 악화로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여기에 중국·말레이시아 업체들이 산업·인쇄용지 생산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단가 인하 등 ‘출혈 경쟁’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최현수 대표가 이끄는 깨끗한나라의 경우에는 3사 중 유일하게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효과로 적자가 축소되긴 했으나, 제지 부문의 주된 사업인 백판지(박스 포장의 원재료)와 화장지 수요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자 포장재의 경우에는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데, 동남아시아·미국 중심의 수출 역시 부진했었다”라며 사업 전반적으로 제지 산업이 위축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지 또한 인도네시아 APP가 모나리자·쌍용C&B(코디)를 인수해 국내 시장에서 저가 공세에 나서고 있다”라고 전했다. 깨끗한나라는 지난해 5,371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5,149억 원)보다 매출액은 4.3% 늘었으나, 흑자 전환에는 실패하며 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솔제지의 경우 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수출 증가와 달러화 강세(고환율) 효과를 받고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점차 사그라지면서 제지 업계에서 ‘특수’를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제지업계 1위인 한솔제지의 경우 2024년 매출은 2조 2,245억 원으로 2조 1,941억 원을 벌어들인 전년에 비해 1.4% 정도 늘어났으나, 영업이익은 472억 원에서 220억 원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이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융 환경 악화로 늘어난 적자 규모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중 환경 사업본부가 시공사로 참여한 물류센터 사업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환경 사업본부가 시공사로 참여한 경기 이천·안산 물류센터 등 일부 사업에서 공사 미수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한솔제지에 누적된 대손충당금만 약 7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솔제지는 최근 핵심 원재료인 펄프 가격의 하락세와 낮아진 해상 운임으로 제지 부문에서는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예정이다.
무림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된 두 업체에 비해 비교적 선방한 모습을 보였다. 무림 계열 3개 회사(무림페이퍼·무림P&P·무림SP) 실적을 더하면 지난해 매출은 2조 3,825억 원으로 약 6% 정도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266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펄프를 자체 생산하는 점이 무림의 무기가 됐다. 펄프는 원가의 60%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2분기 톤(t)당 883달러를 기록했던 국제 펄프 가격이 4분기 670달러까지 떨어져 가격이 안정화된 것이 오히려 무림의 악재가 됐다. 이 때문에 당초 증권가가 예상한 수치보다는 부진한 실적을 거두게 됐다.
한편, 제지업계는 한국은행이 책정한 2025년 경제 성장률 성장 전망치가 1.5%에 그치면서 작년보다 0.5% 낮아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어려운 업계 상황 속에서 사업의 다각화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플라스틱 소재를 대체할 종이 기반의 신소재이다.
한솔제지와 무림은 종이 원료인 펄프에서 추출하는 친환경 신소재 ‘나노 셀룰로스’ 연구개발을 완료하고 이를 활용한 관련 제품 개발에 한창이다. 이 신소재는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10억분의 1로 쪼개 나노화한 고분자 소재 물질이다. 분자 간 결합력이 탁월해 무게는 철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5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제2의 탄소섬유’로 불릴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고,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성분인 만큼 친환경적이고 재생 가능한 자원이라는 장점이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나노 셀룰로스 관련 시장이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연평균 19%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깨끗한나라의 경우는 대상층의 전환을 꾀했다. 주력 사업인 백판지 부문 수요 침체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실적이 흔들리자,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반려동물 시장에서 기존 제지 사업을 다각화해 동물이 사용하는 종이 용품을 내놨다. 깨끗한나라는 지난해 반려동물 전문 브랜드 ‘포포몽’을 통해 고양이들을 위한 ‘먼지 제로 벤토나이트 고양이 모래’를 출시했다. 이전에는 같은 브랜드에서 펫 티슈와 배변 패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깨끗한나라가 과거에도 영위하던 기저귀·물티슈·휴지 등을 이용해 타깃을 사람에서 반려동물로 넓힌 결과물이다.
한 제지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해 “오너는 물론 최고경영자(CEO)까지 상당수의 제지사 대표가 경영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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