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퇴직연금 실물이전제도 시행
이전 불가능한 상품 따져 봐야
EFT 등 해외 주식 이중과세 주의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꾸준히 커지는 중이다. 지난해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발표한 ‘퇴직연금 적립금 장기 추계와 자본시장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액은 2023년 말 382조 4,000억 원에서 2040년 1,172조 원, 2055년 1,858조 원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노후 대비를 위한 퇴직연금 투자자들도 늘어나면서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퇴직연금 운용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중이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이 ‘묵혀 두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주였던 반면, 최근 그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퇴직연금 사업을 한 14개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103조 9,25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19.81% 증가한 수치로, 은행(13.9%)과 보험(4.9%)의 증가율을 크게 상회한다.
이는 지난해 10월 말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가 시행된 영향으로 추측됐다. 실물 이전 제도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중도해지 비용 없이 금융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을 옮기기 위해서는 기존 계좌의 해지가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중도해지 비용과 펀드 환매 후 재매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 등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해당 제도의 도입으로 계좌의 해지 없이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게 되자, 비교적 다양한 상품에 투자가 가능하고, 수익률도 높은 증권사로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2일 미래에셋증권이 퇴직연금을 옮긴 가입자 계좌를 분석한 결과, 미래에셋증권의 실물 이전 계좌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와 일반 공모펀드 상품의 비중이 47.1%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는 증권사가 가진 강점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은행은 ETF 실시간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증권사는 ETF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취급 상품 또한 800여 개로 다양하다.
수익률 또한 은행권보다 높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확정급여형(DB) 6.9%, 확정기여형(DC) 9%, 개인형퇴직연금(IRP) 9.2%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은행권 수익률 평균인 4.8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러한 증권사로의 이동은 IRP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올해 들어 4대 시중은행에서 감소한 퇴직연금 잔액 1,883억 원 IRP에서만 1,207억 원이 줄었다. 이에 반해 4분기 기준 증권사의 IRP 운용액은 34조 9,995억 원을 기록했으며, 증가율은 22.05%로 가장 높았다.
이에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연금 유입세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시행으로 이전이 자유로워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더 높은 수익률과 맞춤형 투자 솔루션을 제공하는 증권사의 퇴직연금 상품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을 이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이전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상품을 이전하려는 금융회사에서도 취급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물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 상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물 이전 대상은 예금,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주요 퇴직연금 상품 대부분이 해당한다. 하지만 보험계약 형태의 상품을 포함한 일부 상품들은 실물 이전이 불가능하다. 또한, 퇴직연금 이전은 동일한 퇴직연금 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상품이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퇴직연금 제도가 상이하면 해지 후 재가입해야 한다.
한편, 정부의 세제 개편으로 연금 계좌에서 해외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투자자들이 이중과세, 배당금 감소 등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올해부터 해외 현지에서 원천징수 된 세후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생긴 일이다. 연금 계좌에서 해외 주식형 ETF에 투자하는 입장에선 변경된 과세 방식이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원천징수 된 세금이 제외된 금액이 입금되면서 과세이연 혜택을 사실상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중과세 논란도 피할 수 없다.
한 투자자는 이에 대해 “해외 주식형 ETF에 투자해 분배금을 받으면서 미국 정부에 세금을 냈는데, 나중에 연금으로 받으면서 한국 정부에 연금 소득세를 또 내야 하는 건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의견을 전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정부가 불리한 과세 방식으로 연금 계좌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에 우려하면서 결국 연금 가입을 기피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뒤늦게 해당 문제를 인지한 기획재정부는 금융투자업계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기재부에서는 원천징수 되는 배당소득세는 그대로 두고 연금소득세만 투자자들에게 환급해 주는 방식을 논의하는 중으로 알려졌다.
다만 논의가 이루어지더라도 환급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만큼 올해 안에는 시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관련 업계 전문가는 “배당소득세는 즉각 과세되고 연금소득세는 시일이 지난 후 환급된다는 점에서 이미 과세 이연 효과가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당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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