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조권 소송으로 정치의 길을 열다
1993년 인천 경남아파트 주민들은 대기업의 신축 건물로 인해 일조권이 침해됐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은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당시 해당 주민들의 변호를 맡은 33세의 젊은 변호사가 존재한다. 바로 현재 서울특별시 시장인 오세훈 시장이다.
그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억 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고, 국내 최초로 일조권이 헌법상 환경권으로 인정되는 판례를 이끌었다. 이 사건은 오세훈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고, 그를 ‘환경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오세훈은 이후 환경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해 최열 대표와 함께 시민상담실을 운영하며 무료 법률 상담을 이어갔다. 1990년대 중반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위원과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감사로 활동했고,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과 시민 상담을 병행하며 환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오세훈은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젊은 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영입 제안을 받은 그는 이회창 전 총재의 설득으로 한나라당에 합류해 서울 강남을 선거구에서 출마해 59.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개혁 입법가에서 서울시장으로
16대 국회에서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그는 ‘오세훈 3법’으로도 불리는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후원금 상한액을 500만 원으로 제한하고, 지구당과 정당 후원회를 폐지해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7대 총선에서도 무난하게 선출될 것이라고 예상됐던 오세훈은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고, 이후 2006년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복귀했다. 당시 쟁쟁한 후보였던 홍준표, 맹형규 등을 제치고 공천받아 출마한 그는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되어 최연소 서울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공기를 제주처럼 만들겠다”라며 천연가스버스 확대, 도로 물청소 등 환경정책을 추진해 미세먼지를 23%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다산콜센터, 디자인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성공적인 도시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2010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무상급식안에 반대하면서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거는 자충수에 시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당시 무상급식안의 투표가 무산되면서 개표조차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오 시장은 한나라당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약 10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낙선을 거듭하는 등 고배를 마셨다.

정치 재기 넘어 5선 도전 예고
그의 정치적 재기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이 계기가 됐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 논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서울시장이 공석이 된 것이다. 이에 오 시장은 2021년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서 보궐선거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18.3% 차이로 꺾으며 복귀했다.
이듬해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송영길 후보를 19.82%P 차로 제치며 서울시장 4선에 성공했다. 4선 당시 서울 425개 행정동 모두에서 승리하며 완승을 거둔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했으나, 지난 4월 대선 출마 선언 3일 만에 불출마를 결정했다.
한편, 오 시장은 지난 7월 “일 욕심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게 사실”이라며 오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5선 도전을 예고했다. 환경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이어진 그의 행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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