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5,000개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 불황에 바뀐 거리 모습

학원 폐업 급증
불황 속 신흥 트렌드
로또·신용대출도 증가

한국 경제가 얼어붙으며 가계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분위별 교육비 지출에서 3분위(15.7%)와 4분위(11.6%)의 교육비 지출은 늘었지만 1분위(-7%), 2분위(-11.5%), 5분위(-10.7%)의 교육비 지출이 감소했다.

국내 학원업계 관계자 26만 명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서 학원 직거래 관련 게시글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가계 지출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교육비마저 무너진 것이다. 지난해 해당 카페에 등록된 학원 매매 관련 글은 총 5,208건으로, 코로나19 유행기였던 2020년(3,450건)보다 약 50% 증가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10년 넘게 영어학원을 운영 중인 주미영 씨는 “현재 중·고등학생은 과거 출산율이 높았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대치동이나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학원 운영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라며 “지방은 물론 송파와 목동 등지에서도 다니던 학원이 폐업했다며 옮겨오는 학생들이 늘었다”라고 전했다.

학원 폐업은 경기 불황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우리나라 사교육 참여율은 약 80%에 달한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의 저자 김현성 씨는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사교육비는 피할 수 없는 필수 지출이며, 이는 사실상 준(準)조세에 가깝다”면서 “이 비용을 부담하는 30~60세 인구층은 국가의 핵심 납세자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즉, 10가구 중 8가구가 자녀 교육을 위해 사교육비를 필수적으로 지출한다는 의미다.

업계는 학원 시장의 장기적인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가계 지출의 약 16%를 교육비에 할애하지만, 경기 침체와 저출산, 물가 상승이 겹치며 학원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최근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대부분의 학원이 학원비를 인상했다”라며 “이로 인해 학부모들이 기존에 다니던 학원을 3개에서 2개로 줄이는 등 지출을 조정하면서, 경쟁에서 밀린 학원들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경기 침체기마다 거리 곳곳에 등장하는 매장이 있다. 불황형 소비의 대표주자 ‘가챠샵’이다. 최근 홍대입구역 인근에는 ‘가챠샵’이 무려 23곳이나 들어섰다. 심지어 최근에는 콘텐츠가 다양해졌다. 인형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캡슐에 피규어, 문구류, 소품 등 다양한 상품을 담아 판매하는 ‘가챠샵’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홍대 가챠샵을 찾은 한 20대 여성은 “홍대는 가챠샵 투어의 성지”라며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설렘과 수집의 재미가 가챠샵을 찾는 이유”라고 전했다. 가챠샵은 홍대 외에도 건대 입구, 서울대 입구, 성신여대 입구 등 주요 대학가와 홍대 AK플라자, 잠실 롯데몰, 용산 아이파크몰, 스타필드 수원점 같은 복합쇼핑몰에도 잇따라 입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실 온오프라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을 ‘뽑기’ 형태로 구매한다는 것은 소비의 가장 큰 요인이 ‘재미’라는 뜻이다. 키덜트 문화 역시 ‘재미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여기에 일본 현지에서 느꼈던 재미를 국내에서도 얻을 수 있다 보니 최근 가챠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인근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2016~2017년에는 인형뽑기방이 유행했다면, 최근에는 임대가 나면 가챠샵이나 무인 사진관 문의가 많다”라며 “높은 인건비와 물가 탓에 소자본으로 24시간 매출이 가능한 무인점포를 선호하는 창업자가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챠샵의 매력은 소액으로 ‘뜻밖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기마다 술·담배, 복권 등 ‘단순한 희망’을 좇는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의 연장선이다.

불황을 방증하듯 로또 판매액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와 복권 수탁 사업자 동행복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5조 9,562억 원으로 전년(5조 6,526억 원)보다 5%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인 신용카드 대출도 급증했다. 금리가 최대 20%에 이르는 신용카드 대출은 은행권 대출이 거절된 중·저신용자들의 급전 창구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