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해체한 해태그룹
한때 재계 서열 24위 기록
사업 다각화와 무리한 확장으로 몰락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업이 존재한다. 적산 기업 나가오카(永岡)제과의 경리사원이었던 박병규가 민후식, 신덕발, 한달성 등 3명과 함께 합심해 해방 직후 1945년 ‘해태제과합명회사’를 세운 게 이 그룹의 시초이다. 바로 ‘해태그룹’이다.
해방과 함께 탄생한 해태의 길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당시에는 해방 직후라 모든 것이 부족했고 사회는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해태 임직원들은 굶주린 직원들의 배를 채우겠다며 가마솥에 재료를 넣어 졸이는 전통 방식을 사용해 연양갱을 만들었고, 이 물건을 출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성장해 1958년에는 해태산업을 세워 사세 확장을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를 거치며 해태제과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호남 사람들의 열렬한 애향심이 큰 보탬이 됐다. 해태가 전라도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60년대 이후 호남 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상경하며 수도권에서도 엄청난 판매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1973년에는 해태식품을 세워 음료 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1977년 공동 창업주였던 박병규가 급서하자 공동 창업주 간에 경영권 분쟁이 생겼다. 이에 박병규의 장남이던 박건배 기획과장이 부친 사망 직후 상무로 긴급 승진했다. 이후 박건배는 1978년 전무, 1979년 부사장을 거쳐 1981년 해태제과, 해태상사, 해태음료 등 주 계열사 3개사 사장이 되어 사실상 경영권을 얻었다.
회사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박건배는 1983년부터 그룹 회장에 취임해 본격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 1981년 코래드를 세워 광고업에 진출했고, 같은 해 프로야구 출범 직전 참여해 해태 타이거즈를 창단했다.

이로써 해태그룹은 해태제과, 해태음료, 해태산업 등 식품 계열사 6개와 해태상사, 신방전자, 해태타이거즈 등 4개의 비식품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이에 해태그룹은 1996년 말 기준 자산 3조 3,900억 원, 매출액 2조 7,100억 원으로 재계 2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6년 그룹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박건배가 내세운 계획 때문이었다. 그는 식료품업의 비중을 줄이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 다각화를 진행했다.
박건배 회장이 해태그룹의 주력 사업이던 식품 대신 선택한 것은 전자와 중공업 등의 비식품 분야였다. 박 회장은 1988년 신방전자를 해태전자로 사명을 바꿨고, 1994년 12월 기술, 유통망 등이 경쟁사 등에 밀린다는 이유로 전문 오디오업체인 인켈을 인수했다.
1995년에는 전화기 전문 제조업체 나우정밀을 인수해 인켈과 합병하며 본격적인 전자 그룹으로의 도약을 시도했다. 또한, 1997년에는 기존에 인수했던 미진공업사를 해태중공업으로 변경해 중공업에도 진출할 기반을 다졌다.

이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해태전자, 해태중공업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발생시키며 해태그룹의 발목을 붙잡았다. 해태그룹은 기업 특성상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였으나, 계속되는 부채의 발생으로 그마저도 점점 악화하였다. 해태그룹이 부도 직전인 1996년 은행에서 빌린 돈은 총 2조 9,780억 원이었다.
해태그룹은 결국 1997년 8월 22일, 어음 200억 원을 결제하지 못하며 부도 위기를 맞았다. 이에 조흥은행 등이 자금을 지원해 부도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2개월 뒤 11월 만기 될 어음 196억 원을 처리하지 못해 해태제과 등 3개 계열사가 부도 처리됐다. 이에 전자와 중공업 관련 계열사는 대부분 정리됐다. 식품 관련 계열사는 대부분 해태제과에 합병된 후 2001년 외국 UBS컨소시엄에 매각되었다.

4년 뒤인 2005년 해당 회사를 크라운제과가 인수하면서 해태제과식품으로 재탄생했다. 2014년 해태제과식품은 대한민국을 강타한 허니버터칩을 만들었다. 허니버터칩은 출시 4개월 만에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매출 110억 원을 달성했고, 다음 해인 2015년에는 523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해태유통은 이랜드를 거쳐 신세계에 다시 매각됐으며, 해태산업은 국순당에 매각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는 기아자동차에 인수돼 기아 타이거즈로 전환됐다.
한편, 박건배 전 회장은 1989년 설립된 해태산업의 수입 주류 자회사 금양인터내셔날을 인수해 와인 유통 사업으로 재기를 꿈꾸기도 했으나, 2017년 6월 건설업체인 까뮤이앤씨가 지분 79.34%를 매입하며 돌연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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