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 기대와 혼란 공존
교육자료로 출발, 현장 반발
공교육 혁신인가, 과잉인가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될 예정인 AI 디지털교과서(이하 AI 교과서)에 대해 교육 현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교육부는 공교육 혁신과 학생 맞춤형 교육 실현을 목표로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를 두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AI 교과서의 효과성과 준비 부족을 둘러싼 논란은 정책 추진의 현실성과 신뢰를 시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AI 교과서는 정식 교과서가 아닌 보조적 교육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에 반발하며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AI 교과서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 대전환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장관은 1월 2일 시무식에서 “AI 교과서를 통해 공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이루고, 학습 부진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맞춤형 교실을 만들겠다”며 도입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의 결정과 교육부의 의지 사이의 간극은 학교 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단법인 좋은교사운동과 전국수학교사모임이 지난해 말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중고등학교 수학교사와 초등교사 672명 중 89.6%가 AI 교과서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했다. 응답자 중 75.9%는 AI 교과서가 수학 수업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71%는 기초 학력 부진 해결에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AI 교과서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질문에는 89.2%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또한, 수학적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질문에도 91.4%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는 현장 교사들이 AI 교과서를 학습 도구로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부모들 또한 AI 교과서 도입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스마트폰 및 SNS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스마트폰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은 평일 4시간 17분, 주말 6시간 40분에 달한다. 교육 목적 외의 사용 시간이 상당한 상황에서 AI 교과서는 학생들의 디지털 의존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녀들과의 디지털 사용 문제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부모들은 AI 교과서가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AI 교과서가 학생들을 돕는 도구가 아닌, 오히려 디지털 과잉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AI 교과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준비 부족도 도입 반대의 주요 이유로 꼽힌다. 교육부는 당초 지난해 5월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8월까지 검정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일정이 지연되며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이 강행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 후에도 명확한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아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2023년 4세대 교육행정 정보시스템(나이스) 개통 당시 시스템 안정화에만 수개월이 소요되며 현장에서 겪은 혼란도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시험 문제 출력 오류 등 시스템 문제로 인해 학교 현장이 큰 어려움을 겪은 사례는 디지털 기반 교육 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주호 부총리는 AI 교과서가 공교육 혁신의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사들은 학습 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맞춤형 수업과 교사와 학생 간의 인간적인 교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현실적인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AI 교과서 도입이 공교육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실험에 불과한 것인지는 교육부의 준비와 실행 과정에 달려 있다. 정책 강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충분한 검증을 통해 신뢰를 쌓는 일일 것이다. 과연 AI 교과서가 기대와 우려를 넘어선 성공적인 혁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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