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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지금은?

한하율 기자 조회수  

유일한 박사가 세운 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부활
창업주 손녀, “창업주 정신 지켜야”

'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출처 : 뉴스 1

국내 제약사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하는 유한양행은 1926년 경성부 종로2정목 45번지 덕원빌딩에 독립운동가이면서 기업가였던 유일한 박사가 창립했다. 유일한 박사는 1895년 1월 15일 평안도 평안부에서 재봉틀 장사로 자수성가한 상인 유기연의 자식 중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9살이 되던 190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한 유일한은 숙주나물 사업을 시작해 라초이 식품회사(주)를 설립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유한양행을 설립한 이유가 바로 이 식품회사에 있다. 라초이 식품회사 경영에 필요한 녹두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에 방문하였다가 북간도에서 지내던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난 일을 계기가 되어 제약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유 창업주의 아버지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아들을 유학 보냈으나,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그에게 실망해 “내가 겨우 숙주나물 장사나 하라고 너를 미국에 보낸 줄 아느냐?”라며 “큰 공부를 했으면 큰일을 하라”라고 훈계를 했다고 전해진다.

'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출처 : 유한양행

이에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약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은 빈곤과 기아로 인해 쉽게 병을 얻었지만, 약이 귀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당시 유한양행의 주된 판매 제품이던 구충제와 결핵약, 피부병 연고 등은 그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약이었다. 처음 유한양행은 이러한 의약품들을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해 오다 1933년에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자체 개발한 일을 시작으로 국산 의약품 개발/판매에 전념했다. 이후 1936년 부천군 소사읍(현재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생산공장 및 제약연구소를 세우고, 1937년부터는 해외에 지사를 두고 일본 제약업체들과도 경쟁했다.

유한양행의 성공 비결은 정직한 마케팅으로 알려졌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한국의 제약회사들은 서로를 비방하거나 약의 효과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광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과장된 광고 없이 약의 효능에 관해 설명하고 의학박사와 약제사의 이름을 실어 제품을 증명했다.

'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출처 : 유한양행

유 창업주는 이렇듯 유한양행을 경영할 때 항상 윤리 경영을 실천해 왔다. 그리고 1939년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며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평소 가지고 있던 이념을 실천하기도 했다. ‘유일한 정신’으로 잘 알려진 그의 경영 철칙은 경영권 승계로도 이어졌다.

유 창업주는 은퇴 전 일가친척들을 모두 해고하거나 사직시켜 유한양행의 경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1969년 노환으로 경영에서 은퇴하면서 아들인 유일선이 아닌 전문경영인(CEO)에게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인계했다. 유일선은 부사장으로 취임하여 기업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고, 그러한 아들의 행보가 탐탁지 않았던 유 창업주가 그를 해고하고 당시 전무이던 조권순 전무에게 승계한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출처 : 뉴스 1

실제로 유한양행의 CEO는 유 창업주가 은퇴한 1969년부터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에 따라 내부 승진으로 임명되고 있다. 해당 자리의 경우에도 정관에 의해 연임을 포함해 6년 후에는 퇴사해야 한다. 현재 대표이사인 조욱제 대표도 1987년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총괄 관리 본부장, 부사장을 거쳐 2021년 지금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창업주이던 유일한과 1993년부터 1996년까지 회장직을 역임한 연만희 전 고문뿐이었지만, 지난해 3월 15일 유한양행 정기주주총회에서 약 95% 찬성으로 28년 만에 회장·부회장직이 부활하게 됐다.

'주인 없는 회사' 표방하며 회장 없던 제약회사,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출처 : 뉴스 1

이에 회장이 유한양행과 계열사의 경영에 관여하며 지배 구조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직원들은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해당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3월 주총에 참석한 유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할아버지의 정신이 유한양행을 특별하게 만든다”라며 “그저 회사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관찰하고 지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라고 말하며 우회적으로 우려를 내비쳤다.

한편, 유한양행의 관계자는 회장직 신설이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조욱제 대표는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사심이나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라며 “현행 구조로는 매번 인재를 영입할 때마다 주주총회를 열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논란 끝에 신설한 회장직은 현재까지도 공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 KT 등 주인 없는 회사에서 회장직을 둘러싸고 발생한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유한양행의 회장직 신설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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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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