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수제 버거 ‘크라제버거’
1998년 이후 14년간 1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몰락
과거 국내에서는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KFC 등의 패스트푸드점 말고는 햄버거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다만, 최근에는 번화가 어디서나 수제버거집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제버거가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한국에 프리미엄 수제버거 열풍을 몰고 온 한 토종 브랜드 덕분이다. 이는 한때 신선한 외식 메뉴로 사랑받은 크라제 버거다.
1998년 압구정에 1호점 문을 연 크라제 버거는 한국 토종 브랜드로 ‘모든 사람이 우리 햄버거를 미치도록 좋아하게 만들자’는 의미에서 대한민국(Korea)과 열풍, 유행(craze) 두 단어를 조합한 사명으로 출범했다. 당초 자본금 3억 원으로 시작한 크라제 버거는 2년 뒤 ‘크라제 코리아’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 외식 시장에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수제버거를 소개했다.
업계에서는 크라제 버거로 인해 햄버거를 ‘맛있지만, 몸에 나쁜 음식’,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던 한국 사람들에게 칠리, 마늘 플레이크, 버섯 등 다양한 토핑으로 맛을 내 신선하게 다가와 ‘정크 푸드’의 인식을 바꿨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크라제 버거는 인기를 끌었다. 당시 크라제 버거의 햄버거 단품 가격은 7000~1만 원 수준이었고, 음료수는 1캔에 2,500원에 판매됐다. 같은 시기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비교적 높은 가격대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전략’이 통해 인기를 끌었다.
특히 크라제버거는 수제버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일찍 선점한 데다 압구정, 대치동, 가로수길 등 비교적 물가가 높은 동네에 먼저 매장을 낸 고급화 전략까지 먹혀들면서 승승장구했다. 크라제버거의 전성기에는 43개의 직영 매장을 포함한 100여 개의 점포를 운영했고. 매년 2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크라제 버거는 1998년 이후 14년간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내수 시장의 인기를 기반으로 해외에 진출한 크라제 버거는 미국, 싱가포르, 상하이, 마카오 등지에 문을 연다. 이어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서 크라제 버거가 각국 장차관, 교섭대표, 취재기자단에 간식으로 제공되기도 한 크라제 버거는 2011년 무려 366억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크라제 버거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는 지난 2011년 최고 매출을 찍었을 당시 영업이익이 오히려 적자로 전환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1년 4억 원 수준이던 적자는 이듬해 57억 원으로 불어났고, 부채 비율도 133.07%에서 1740.25%까지 늘어났다.
특히 수익이 적게 나는 직영점 18곳, 가맹점 10곳이 문을 닫았고, 100곳에 달하던 점포 수는 2012년 연말 70곳 수준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이어진 폐점으로 크라제 버거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위기 봉착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실제로 크라제버거는 지난 2009년 의료기기 생산 업체인 제넥셀세인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었다. 이는 코스닥 상장사인 제넥셀세인을 통해 우회상장을 하려는 의도로 추측됐다. 다만, 제넥셀세인 소액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증시 입성은 좌절되었고, 상장을 위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린 여파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해외 매장이 안겨준 손실도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2년 연말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법인의 손실은 총 100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어 수제버거의 인기를 실감한 시장에서 다양한 맛의 수제버거 전문점들이 등장하며 사업 경쟁력까지 악화했다.
또한, 시시각각 변화는 소비자 입맛과 외식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크라제 버거가 신세계 푸드로부터 가공된 패티를 제공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수제버거’라는 차별화 마케팅은 실패했다.
결국 크라제 버거는 지난 2013년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고, 2014년 3월, 나우 IB 캐피털의 사모펀드에 출자한 삼양식품이 이를 인수하게 됐다. 당시 삼양은 크라제 버거를 두고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크라제 MEX, 크라제 그린 등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다만, 소비자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으며 크라제는 오히려 모기업인 삼양식품의 재무구조에까지 악영향을 주게 됐다. 여기에 미국 가맹점 사업자가 360억 대의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크라제는 다시 한번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당시 재매각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크라제를 사들이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아, 법원은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크라제버거의 회생 절차를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크라제 버거를 운영하던 법인 ‘크라제 인터내셔널’은 파산했다. 그러나 상표권 등의 자산은 LF 푸드가 10억 원대에 사들여 활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LF 푸드는 새 가정간편식(HMR) 브랜드를 선보이는 등 HMR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LF푸드는 HMR 사업으로 프리미엄 일식 브랜드 하코야, 홈다이닝 브랜드 모노키친을 비롯해 크라제, 마리반점 등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크라제 버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HMR로 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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