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서울사대부고 레슬링부 출신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맡아 후원
2024 파리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린 가운데 삼성그룹이 故 이건희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올림픽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올림픽 때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스포츠계의 위상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회장으로 있던 시절 가장 많이 신경을 쓴 한국 스포츠 종목이 있다. 바로 레슬링이다.
당초 이건희 선대 회장은 1958년 서울사대부고 레슬링부의 입부 면접에서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당시 일본에선 프로레슬링이 흥행했다. 일본 프로레슬링 영웅 한국인 역도산을 보면서 레슬링이 하고 싶어졌다”라고 밝힐 정도로 레슬링에 대한 흥미가 상당했다.
특히 그는 이런 말을 입부 면접 자리에서 전한 뒤 레슬링부에 들어가 2년 동안 열심히 레슬링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레슬링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훈련 도중 부상을 입고 가족들의 반대가 이어지는 등 레슬링을 그만두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에도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바로 1982년 그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으며 학창 시절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선수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레슬링은 이건희 회장을 통해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당시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주는 대한체육회 포상금으로 알려진 금메달 100만 원·은메달 50만 원·동메달 30만 원과 같은 금액을 레슬링 선수들에게 추가로 지급하기도 하며 레슬링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다. 이어 선수 연금의 경우 타 종목의 2배 수준으로 책정해 한국 레슬링 산업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이끌던 삼성그룹은 레슬링이라는 종목에 약 300억 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덕분에 한국 레슬링은 일본 레슬링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당초 한국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레슬링을 수입했을뿐더러 초창기에는 일본으로부터 기술 전수를 하였기 때문에 일본을 넘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다. 이런 상황에 한국 레슬링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을 만나면 기가 죽거나 결선을 포기하는 등의 일이 빈번했다.
다만, 삼성의 지원 이후 한국 선수들은 달라졌다. 이들은 일본 레슬링 타도를 목표로 정하며 일본으로부터 배웠던 기술을 포기하고 동유럽의 레슬링 강국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유럽 국가로 전지훈련을 가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헝가리와 소련 전지훈련을 통해 선진기술을 익힌 한국 레슬링은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이겨내는 쾌거를 잡았다.
레슬링 산업에 16년간 관심을 두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이건희 회장도 얻은 것은 분명했다. 대한민국이 레슬링 강국으로 거듭나자, IOC 위원 물망에 올랐으며, 다소 시간이 소요되긴 했으나 결국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은 개인 자격의 IOC 위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개인 자격의 IOC 위원이 우리나라에서 2명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편, 삼성전자의 경우 1988 서울올림픽에서 지역 후원사로 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이후 1997년 IOC와 글로벌 후원사인 TOP(The Olympic Partner) 계약을 체결하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건희 선대 회장의 “대표적인 무형자산이자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브랜드 경영’ 방침에 따라 올림픽 후원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며 현재까지 이건희 회장의 업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이건희 회장은 한국 스포츠계의 큰 발자취를 남긴 ‘스포츠맨’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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