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기료 폭탄, 기업 부메랑
전기요금 3년 새 76% 급등
국내 1위 공장도 멈췄다 ‘어쩌나’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최근 3년간 76%나 급등하면서 기간산업 전반이 위기에 빠졌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합금철, 시멘트, 철강 등 국내 주요 산업들이 생산라인을 줄줄이 멈추고 있다. 업황 부진에 간신히 버텨오던 국내 기반산업이 전기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고사 위기에 내몰리는 모양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합금철 1위 기업 DB메탈은 15개 생산라인 중 13개의 전원을 완전히 껐다. 지난해 말 산업용 전기요금이 2021년 말 대비 76%가량 오르자, 국내 생산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직원 470명 중 75%인 350명을 감원했고, 지난 3월 24일 그룹 내 부동산 개발회사인 DB월드와 합병을 결정했다. 제조업을 포기하고 부동산으로 업종을 전환한 것이다.

DB메탈의 매출은 2022년 6,400억 원에서 2023년 2,002억 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2021년 1,236억 원, 2022년 1,489억 원의 흑자에서 2023년 693억 원, 2024년 280억 원의 적자로 전환됐다. 수출 비중도 2023년 42.4%(1,358억 원)에서 2024년 18.4%(269억 원)로 급격히 감소했다.
결정적 원인은 전기요금 폭등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말 kWh당 105.5원에서 2024년 말 185.5원으로 치솟았다. DB메탈의 경우 2022년 1분기 kWh당 100원에서 2025년 196원으로 약 2배 가까이 급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합금철 24만t 생산 시 전기료는 2022년 990억 원에서 2025년 1,900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2개 라인만 가동해도 연간 전기료가 370억 원에 달해 전체 생산원가의 45%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국내 2위 합금철 업체인 심팩도 지난해 5월 충남 당진공장 문을 닫고 브라질 합작법인에서 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전기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설비를 해외로 옮기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시멘트 산업은 건설경기 침체에 전기요금 부담까지 가중되어 전국 35기의 생산라인 중 10기(약 30%)가 가동을 중단했다. 레미콘 산업의 공장 가동률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17%로 추락했다.

전기로를 사용하는 한국철강, 대한제강, 환영철강 등은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만 공장을 가동한다. 동국제강이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야간 1교대’ 체제는 전기로 철강사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산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23년 강릉·동해·삼척상공회의소와 7개 제조기업이 협의체를 구성해 전기 직거래를 시도했고, 이철규 의원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2024년 1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신설’ 전력 수요처에만 적용되어 기존 기업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용지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5일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한 업종의 1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만 집중적으로 올리는 추세가 지속되면 한국 기업의 생산·투자 활동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간산업의 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이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한전의 적자 해소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향후 전기요금 정책의 방향이 국내 제조업의 생존을 좌우할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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