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자전거
김철호 회장 설립
코로나 시기 기세 올라와

우리나라 자전거 회사로 역사상 가장 길고 인지도가 높은 회사는 삼천리자전거이다. 해당 회사는 기아 김철호 회장이 설립했으며, 기아와 함께 부품기업인 ‘경성 정공’에서 출발해 형제 회사로 불리기도 했다.
당초 삼천리자전거는 기아차와 같은 곳에서 시작된 사업이지만 서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현재 삼천리자전거는 자전거 전문 기업으로 오랜 시간 동안 성장하며, 국내 자전거 브랜드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회사로 자리 잡았다.

회사의 시작은 1944년, 김철호 창업주가 설립한 경성 정공에서 출발했다. 이후 1952년 자전거 사업부를 정식으로 출범하며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1957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 공장을 착공하였으며, 1965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전거를 미국에 수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68년 업계 최초로 KS 마크를 따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자전거회사로 명성을 알렸다. 1969년에는 판매법인 ‘삼천리호자전거판매’를 지었고, 이후 1979년 기아 산업에서 분사하여 삼천리자공(주)로 독립하여 운영했다. 1981년 업계 최초로, 공업진흥청으로부터 품질관리 1등급 업체로 선정되면서 호황기를 누렸다.
1982년 ‘삼천리자전거공업(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이듬해 경남 양산공장을 착공해 1985년 기아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1986년에는 서울 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올림픽의 공식 스폰서로 인정받으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에 1987년 국내 최초로 연간 생산 대수 100만 대를 넘어서는 수치를 달성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는 기존에 사용하던 로고를 변경하고, 빨간 네모 안에 ‘3000’이라는 숫자가 쓰인 새로운 로고를 채택하면서 자전거 브랜드 ‘레스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충북 옥천군으로 생산 지역을 변경했으며, 2004년에는 인라인 사업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1년 후인 2005년 들어 치솟는 물가와 인건비, 파괴된 자전거 부품업계의 인프라, 중국산의 저렴한 신문 자전거 생활 자전거 웨이브 등으로 인해 옥천 공장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2006년에는 새 브랜드 ‘아팔란치아’를 공개하고, 2007년 2월에는 첼로 브랜드를 신설법인 ‘첼로자전거’로 나누었다.

다시 활황을 보이려고 하던 2010년, 업계 최초로 국산 전기자전거를 만들면서 2012년 MTB 브랜드 ‘칼라스’, 2013년 유아용 자전거 ‘샘트라이크’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중~후반에 걸쳐 그동안 거쳤던 침체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인해 큰 피해를 봤지만, 삼천리자전거는 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삼천리자전거는 코로나가 기세를 올린 2020년 2월부터 판매가 살아나면서 6월 이후 판매가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전파를 염려해 대중 위락 시설들이 폐쇄되고, 철저한 방호조치가 이루어지자, 사람들이 공기 잘 통하고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야외 운동인 자전거에 몰리면서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위험한 대중교통수단을 버리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도 증가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삼천리를 포함해 전국의 거의 모든 자전거 매장에서 자전거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현상이 일기도 했다.
따라서 국내 시장 최대 지분을 가진 삼천리도 전용 직영 온라인몰 삼바 몰의 거의 전 모델이 매진되는 등 두 번째 호황기를 누렸다. 당시 삼천리자전거의 수익은 평년기 대비 60%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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