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 소비’의 필수 코스
대용량 가성비 공량
천 원의 아침밥

“오늘도 마감 할인 노려야죠.” 저녁 8시, 직장인 이 모(29) 씨는 퇴근길에 집 근처 대형마트로 향한다. 신선식품 코너에 붙은 ‘50% 할인’ 스티커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지난해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121.01로 전년(117.38) 대비 3.1% 상승했다. 2022년 7.7%, 2023년 6.0% 각각 오른 데 이어 3년 연속 3% 이상 상승했다. 특히 가볍고 저렴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메뉴인 편의점 도시락(4.9%)과 삼각김밥(3.7%) 등도 가격이 올랐다.

고물가 시대, 이른바 ‘짠물 소비’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과거에는 재고 상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으나,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이월된 ‘떨이 상품’을 전문적으로 공략하는 소비자층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가벼운 흠집이나 외관상의 결함이 있는 ‘못난이 상품’이나 리퍼브 제품 역시 실속을 중시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마트의 마감 할인 코너는 이미 ‘핫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다. 오후 7시 이후, 신선식품부터 즉석조리 식품까지 최대 50%까지 할인되는 이 시간대는 ‘반값 쇼핑족’들의 무대다. 서울 구로구에서 자취를 하는 4년 차 직장인 김 모(29) 씨는 “물가가 많이 오른 데다 혼자 살다 보니 과일이나 채소를 정가 주고 사 먹기엔 아깝더라”며 “좀 더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전통시장에 가거나 마트 마감 할인 등을 이용한다”라고 했다. 이어 “온라인으로는 마켓컬리 마감 할인도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편의점도 예외는 아니다. GS25는 지난해 12월 마감 할인 상품 매출이 1년 새 5.3배나 뛰었다. 특히 이 중 20대와 30대가 72%를 차지하며,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임을 입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와 불황이라는 악재에 국내 유통기업들이 대부분 부진한 실적을 보였지만, 창고형 할인점에는 호재가 됐다. 트레이더스와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점은 고물가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지난해 트레이더스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무려 59%나 증가했다. 같은 해 코스트코는 단 19개 매장만으로 6조 5,301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롯데마트보다 높은 성과를 거뒀다.

창고형 할인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성비’다. 창고형 할인점은 일반 대형마트보다 마진율을 낮추는 대신, 대용량 판매로 저렴한 단가를 제공한다. 특히 트레이더스는 연회비가 없다는 점에서 코스트코보다 접근성이 좋다. 자취생 이 모(27) 씨는 “한 번에 대량으로 사두면 장을 자주 볼 필요도 없고, 식재료를 나눠서 요리해 먹으니 훨씬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창고형 할인점에 대한 인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면서 “상품이 대용량임에도 타 유통채널 대비 독보적인 할인가로 인해,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고객들과 공동구매를 하는 1인 가구 소비자 방문도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코스트코는 연회비가 있지만 트레이더스는 연회비도 없어, 향후 신규 출점 점포를 찾는 소비자 발길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식비 절감을 위해 ‘천 원의 아침밥’을 찾는 대학생들도 많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이 사업은 단돈 천 원에 든든한 아침 한 끼를 제공한다. 참여 대학 수도 꾸준히 늘어 2023년 144개교, 2024년 186개교, 2025년에는 190개교로 확대됐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천 원의 아침밥’을 경험한 대학생들의 만족도는 95.8점에 달했다. 특히 응답자 중 99.2%가 사업 지속을 희망할 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종순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장은 “고물가 시대 청년층의 식비 부담을 완화하고 높은 아침식사 결식률 개선과 학업능력 증진에 기여하는 천 원의 아침밥 지원 사업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고물가 시대에 MZ세대는 생활비를 절약하며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똑똑하게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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