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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현대 제치고 재계 서열 3위 찍었던 기업의 최후, 이렇습니다

이시현 기자 조회수  

개풍그룹 이정림 창업주
서울은행(현 하나은행) 창립
4·19혁명 계기로 몰락 시작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한때 국내 개성 상인이 만든 그룹의 대표이자 대한민국의 10대 재벌 중 하나로 꼽혔던 개풍그룹은 재계 서열 2위를 기록하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최근에는 개풍그룹의 이름을 듣기 여간 어렵다. 이는 개풍그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과거의 위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때 현대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올랐던 개풍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개풍그룹은 국내 개성 상인의 대표로 꼽혔던 이정림 창업주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송도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6세를 맞았던 1929년에 밀가루와 설탕, 고무신 등을 취급하는 도매상점인 송래상회(松來商會)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일을 시작하며 사업과 인연을 맺은 이정림은 송래상회에서 5년여 동안 점원 생활을 하는 사이 무차입 경영과 대신불약의 신뢰경영, 한 우물 경영 등으로 상징되는 ‘개성상인 정신’과 접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기서 개성상인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의 상업을 주름잡았던 상인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독특한 조직 체계인 송방과 차인제, 서양의 복식부기보다 앞선 회계시스템인 사개치부법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이정림은 송래상회의 점원 생활을 통해 개성 상인의 후예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는 이정림 창업주가 개성 상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철저한 상도를 터득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21세 무렵인 1933년 개성에서 ‘개성서(西)고무제품직물도매상’을 설립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7년 뒤인 1940년에는 경기도 고무 조합 이사로 재직하면서 주단포목 도매업도 겸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고무신 장사를 하며 중앙 상공의 지배인이던 김용완 경방 명예회장과 친분을 얻었으며, 도매상 운영을 통해 사업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처 : OCI홀딩스
출처 : OCI홀딩스

광복 이후 천일 고무 이리공장에서 고무신 제조에 주력한 이정림 창업주는 국내 최대의 고무신 메이커로 소문났던 천일 고무의 김영준 사장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이 협상을 통해 이정림 창업주는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의 총대리점권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1946년 무역업체인 이합 상회를 개업한 이정림 창업주는 2년 뒤 고향 후배이자 OCI 그룹의 창업주로 알려진 이회림을 영입해 이합 상회의 사명을 개풍상사로 변경했다.

사명 변경과 함께 정식으로 무역업에 뛰어든 그는 개풍그룹을 일궈냈다. 재계에 따르면 개풍그룹은 이정림, 이동준, 이회임, 이정호 네 명이 합작해 출범했으며, 이후 성장을 거듭해 1960년대에는 계열사 10여 곳을 거느려 재계 서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동향 출신·금융계 인사를 위주로 중용하는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경영 스타일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1965년을 기점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출처 : X
출처 : X

이에 창업자 네 명이 각기 다른 회사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회임만 개풍그룹의 의지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회임 역시 1970년 대한 양회를 창립한 것을 계기로 개풍그룹은 완전한 해체 수준을 밟았다. 한편, 개풍그룹의 몰락은 4·19 혁명을 기점으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초 이정림 창업주는 산업자본의 금융 자본화를 위해 1959년 서울은행(現 하나은행)을 설립했다.

특히 서울은행은 당시 지방은행으로 인가를 얻었으며, 계열사 중 하나인 대한 양회 공업이 이 은행의 주식 74%를 확보해 개풍그룹이 오너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당시 삼성, 삼호, 동아상사(이한원) 등이 귀속 은행주 민간불하에 편승해 금융 자본화했던 것에 반해 개풍그룹이 은행 신설에 편승해 성공한 것이다.

출처 : 뉴스 1
출처 : 뉴스 1

재계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민영화는 판도를 뒤집었으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생기업들이 이를 통해 국내 정상급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다만, 자유당 독재 하에서 이루어진 정경유착은 그룹의 몰락을 촉진했다. 실제로 개풍그룹은 1959년 개풍그룹은 모기업인 개풍상사를 비롯해 대한 양회, 호양 산업, 배아 산업, 대한 탄광, 삼화 제철, 동방 화재, 대한철강 등을 거느려 삼성, 삼호에 이어 재계 랭킹 3위의 대기업집단으로 떠올랐다.

다만,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과도 정부가 자유당 정권하에서 권력을 배경 삼아 부당하게 치부한 자들에 대한 단죄 작업에 착수하면서 개풍그룹 역시 정경유착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는 1961년 5월 28일 혁명군 특별수사대가 탈세 혐의가 있는 기업인들을 연행할 당시 이정림 창업주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정림 창업주는 부정 축재액 중 5억 5,000만 환을 추징금으로 납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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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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