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재계 14위
비리문제로 공중분해
“정태수 회장은 기이한 사람”
과거 흙과 철의 사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공무원에서 재계 서열 14위에 빛나는 그룹을 이끌게 된 총수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다. 정태수 회장은 당초 국세청의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다. 출생 당시 본명은 정태준이었으나 개명해야 인생이 풀린다는 역술가의 조언을 들은 후 ‘정태수’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어떻게 재벌 총수가 됐을까?
그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당시 점쟁이가 그를 향해 “직장 그만둬, 사업을 하면 대한민국에서 첫째, 둘째 손가락에 꼽히게 될 것이야”,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라고 조언하자 그는 사업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개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는 역술가를 맹신하는 타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등산을 다니며 몰리브데넘 광산을 발견한 그는 한 달 치 월급 정도 되는 헐값으로 광산을 인수한 후 수백 배의 차익을 남기고 판 뒤 공무원을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함으로써 사업가로 거듭났다.
점쟁이의 조언에 따라 한보그룹이 가장 먼저 손댄 사업은 건설업이었다. 그가 공무원 재직 시절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구로구에 영화아파트를 지으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후 은마아파트를 지어 약 2,000억 원을 손에 쥐며 재벌로 거듭났다. 당시 은마아파트의 완판으로 그는 한보그룹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아파트 사업 이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해외 건설 사업에 진출한 그는 탄광 사업, 철강 사업, 제약 사업, 에너지 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군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이 문어발식 경영이 연상되는 사업의 무리한 확장으로 한보그룹은 점점 무너져 내렸다.
1997년 IMF가 터지며 한보그룹은 결국 부도 처리에 돌입했다. 특히 한보철강의 부도는 대한민국 외환위기의 시발점으로 불리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 등이 연이어 몰락하게 만든 실마리가 됐다. 또한, 당시 터진 한보 리스트가 회자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물론 수감형에 처했다. 한보그룹의 부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국정농단 사건으로 번지며 당시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어 정태수 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을 뒤흔든 정태수 회장의 만행은 끝이 아니었다. 청문회 당시 그는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계열사 사장)이 뭐 압니까?”와 같은 비하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또한, 최근에도 볼 수 있는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 조사에 출석할 때 타는 휠체어 출석 역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처음으로 시작했다. 한보그룹의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관치 금융, 부동산 투기, 황제 경영, 문어발식 확장 등 압축 성장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반면교사로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한보그룹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온갖 비리를 저지른 추악한 기업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정태수 회장의 경우 선고받은 15년 중 6년의 실형을 살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해외 도피를 선택한 그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지난 2019년 6월 22일 정태수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국내로 강제 송환된 뒤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정태수 회장이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는 사망진술서를 검찰이 확보하면서 사망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최종적으로 검찰은 정태수가 2018년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를 알았던 이들은 “정태수 회장은 기이한 사람이었다.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독특하고 엉성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재계 서열 14위에 올라 공무원에서 재벌 총수가 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결국 타지에서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