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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던 재벌, 철강으로 망하다

윤미진 기자 조회수  

삼미 슈퍼스타즈의 삼미그룹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 시달려
1997년 부도로 법정관리 신청

출처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출처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지금은 사라졌지만,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언급되는 야구 구단이 있다. 바로 인천을 연고로 뒀던 팀 ‘삼미 슈퍼스타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2000년대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인 감사용 씨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야구팀은 1985년 삼미그룹의 경영 악화로 청보식품에 매각되면서 ‘청보 핀토스’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를 운영하고 있던 삼미그룹은 재계 17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금력이 있는 기업이었지만, 이후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이어지는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97년 IMF 외환 위기 직전 부도를 맞이하고 사라졌다.

출처 : SK D&D
출처 : SK D&D

지금도 가끔 이름이 언급되는 삼미그룹은 어떤 그룹이었을까. 삼미그룹은 당대 명문이었던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김두식 창업주가 해방 이후 혼란기에 1946년에 비누와 식용유 제조공장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재건 사업을 위해 목재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1954년 서울 청량리에 목재 가공업체인 ‘대일기업’을 세웠다.

실제 국가적인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사업이 성행하면서 5년 만에 인천 동구 만석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대일목재공업’을 세우고, 1960년에는 해외에 목재를 수출입 한 경험을 살려 무역 회사 ‘삼미사’를 세워 무역업으로까지 사세를 확장한다.

이후에도 김두식 창업주는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1963년에는 원목을 수송하기 위해 삼창해운을 인수했고, 1967년 삼미광업개발을 설립해 광산업에도 진출했다. 삼양특수강과 한국특수강공업을 인수해 1975년 9월 삼미특수강주식회사를 세웠다. 1976년 자본금 3억 원으로 삼미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뒤이어 1977년 삼미금속, 1979년 시흥관광개발을 설립했다.

이로써 삼미그룹은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특수강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3공 시절 방위산업체로 지정되는 등 고속 성장 가도를 달렸다. 삼미의 성장세는 1968년 청계천 고가도로에 세워진 삼일빌딩으로 알 수 있다. 1984년까지 삼미그룹의 본사로 사용된 삼일빌딩은 지하 2층~지상 31층 규모의 건물로 당시 대한민국의 최고층 건물로 이름을 알렸다.

출처 : 삼미 슈퍼스타즈
출처 : 삼미 슈퍼스타즈

이러한 기업의 흥행은 1980년 김두식 회장이 골수암 투병 3년 만에 55세로 세상을 등지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9년에 발생한 제2차 오일 쇼크로 해운 및 목재업이 침체하며 회사 경영에 타격을 입은 데다, 당시 30세이던 장남 김현철이 가업을 이으면서 사업 다각화를 이룩한 점이 추후 삼미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현철 회장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기업의 재무 상태를 해결하는 동시에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82년에만 프로야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국단조, 삼미유나백화점, 삼미조선, 삼미전산 등을 인수·설립했다. 또한, 침체기에 접어든 해운업을 과감히 정리하며 1984년 삼미해운이 소유한 18척의 배와 수송권 등을 1,770억 원에 매각했다.

이후에도 재무 상태가 해결되지 않자, 같은 해 삼미그룹의 상징이던 삼일빌딩마저 295억 원에 매각했다. 1985년에는 아픈 손가락이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청보식품에 70억 원에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삼미그룹은 자기자본 대비 은행 대출 비율을 493%에서 190%로 끌어내렸다.

출처 : 뉴스 1
출처 : 뉴스 1

이후 김현철 회장이 삼미그룹을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방향은 특수강 전문 그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11개의 계열사 중 6개를 특수강 관련 업체로 만들 정도였다. 1987년 삼미정공, 1988년 삼미이튼, 삼미켄하, 삼미화인세라믹스, 1989년 삼미전자 및 삼미아구스타항공 등을 각각 설립하는 한편, 글로벌 진출을 위해 1989년엔 캐나다 아틀라스 및 미국 알텍 사를 3,000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이에 1989년 삼미그룹은 계열사 11개, 매출 1조 3,500억 원을 기록하며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김 회장의 결정은 1985년 3저 호황, 자동차 경기 호황 등으로 특수강이 떠오르면서 호재가 되었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금세 특수강 열기가 꺼지면서 해외 공장 삼미특수강은 1992~1993년 2년간 1,685억 원의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출처 : MBC

이 때문에 1991년부터 다시 한번 자금 위기를 맞은 삼미그룹은 거듭된 적자로 불어난 1조 5,000억 원의 부채를 해결할 수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결국 삼미그룹은 해체되고 만다.

이후 (주)삼미는 삼림종합건설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삼미종합특수강은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된 후 2011년 현대비앤지스틸로 변경됐다. 대부분의 계열사도 매각, 합병, 폐업을 거치며 공중으로 분해됐다.

한편, 김현철 전 회장은 2002년 두 차례 직장암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회복한 뒤 2004년부터 아내와 함께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0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티에 선교센터와 함께 병원·기술학교를 짓고 싶다”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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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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