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홀딩스 회장 윤윤수
2000년 매출 1,470억 달성
2007년 휠라 본사 인수

휠라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한국 기업이다. 현재 본사가 대한민국에 있으므로 법적으로도 한국계 이탈리아 기업이 아닌 완전한 대한민국 기업으로 분류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창립된 꽤 역사가 깊은 브랜드다. 휠라 형제가 비엘라(Biella) 지방에서 속옷 위주의 의류 브랜드로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는 자동차로 유명한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면서 기능성과 착용감을 결합한 스포츠웨어로도 영역을 넓혔다.
사업 영역을 확장한 휠라는 스포츠 마케팅을 본격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웨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웨덴 출신의 테니스 스타 비욘 보그를 시작으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개 봉을 무산소로 등정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테니스 여제 모니카 셀레스, 킴 클리스터스, 이탈리아 스키 영웅 알베르토 톰바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을 후원했다. 이러한 마케팅의 성공으로 1980~1990년대에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 유럽 시장에서 휠라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매출 부진이 이어졌다. 과도한 확장의 여파가 겹치면서 항간에서는 본사의 매각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2000년대 초에는 결국 경영 난조로 인해 파산 상태까지 이르렀다. 반면, 한국에서 휠라의 입지는 달랐다. 1992년 설립된 휠라코리아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많은 판매고를 올려 창립 5년 만에 1,500억 원이라는 매출을 달성했다.
본사와 지사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이에 휠라코리아 윤윤수 대표가 200명의 직원들을 설득해 자금을 모아 3명의 휠라 본사 임원 및 미국의 헤지펀드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함께 지주회사인 SBI를 만들어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1억 3,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어제까지는 휠라 본사의 일개 직원이었던 사람이 오늘은 휠라의 주인이 된 것이다. 윤윤수 회장은 휠라를 인수한 이후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휠라를 소생시키기 위해 시장 전략을 수정하고, 적자의 원인을 분석해 꾸준히 개선하는 등의 노력으로 부채를 모두 해결했다. 결국 2007년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2억 7,500만 달러에 인수해 휠라코리아로 이전하고 휠라코리아의 사명을 휠라홀딩스로 변경했다. 이로써 휠라홀딩스는 완벽하게 대한민국에 본사가 있는 한국 회사가 되었다.

휠라홀딩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윤윤수 회장의 공이 컸지만, 그가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윤윤수 회장은 가난한 집의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의사가 되고자 했지만, 삼수에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벽을 넘지 못해 늦은 나이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윤 회장은 이후 외무고시에 응시하기로 결심해 이듬해 1차에 합격하지만, 공무원이 되기보다 기업체에 취직하기로 하고 나이 제한이 있었던 외무고시를 포기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대학을 졸업한 윤 회장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윤 회장은 취업난 끝에 한진해운에 입사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이익도 많이 거둘 수 있고, 나라에 외화도 벌어다 줄 수 있는 무역업이었다.
그는 이력서 수백 장을 써 주로 상사 회사에 지원했지만, 나이 제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회사 이름과 수출하는 회사라는 내용만이 적혀 있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는데, 그 기업이 미국의 거대 유통기업인 JC페니였다. 이후 JC페니에서 삼성전자의 전자레인지를 미국에 대량 수출하는 프로젝트를 성공한 윤 회장은 신발 제조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 때문에 그를 눈여겨보던 화승그룹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화승그룹의 임원이 됐다.
그러나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우연히 보게 된 ET로 아이디어를 내 만든 ET 봉제 인형이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면서 윤 회장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결국 그는 이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3년의 임원 생활 끝에 퇴사한다.

휠라와 그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일을 전전하던 윤 회장은 다시 신발 산업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화승그룹에서 직원이 입고 있던 휠라 티셔츠를 떠올리고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면 잘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당시 미국 휠라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호머 알티스에게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은 휠라 본사에도 알려졌다. 1991년 휠라 본사는 한국 진출을 위해 휠라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윤 회장에게 사장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한다. 윤 회장의 휠라코리아는 설립 이듬해 150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이후 6년간 매년 5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한다. 당시 FILA 회장이었던 엔리코 프레시는 이를 두고 “휠라의 탄생은 이탈리아에서였지만 휠라의 성장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유리알 경영’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투명한 경영을 철칙으로 삼는 윤 회장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는 한발 물러난 상태다. 장남인 부사장 윤근창이 2018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취임하면서 경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윤근창 대표이사 또한 취임 5년 만에 2조 9,000억 원이던 매출액을 4조 2,000억으로 성장시키면서 기업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취임한 2018년부터 ‘유통 채널의 다양화’와 ‘이미지 개선’이라는 전략을 통해 다소 노후한 이미지의 휠라라는 브랜드를 젊은 이미지로 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표는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지는 중장기 전략으로 ‘위닝 투게더’를 내세우기도 했다. 해당 전략에서는 브랜드 가치 재정립(Building the Brand Tribe)과 고객 경험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Customer Centricity), 지속 가능 성장(Sustainability)이라는 세 가지 축에 초점을 맞췄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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